작성자인 ukiyojingu 님의 허가를 받아 번역 및 게시합니다.

ukiyojingu
보카로P, 작곡 및 비평. 대학 교원(인문사회정보학), 대학 도서관 사서.

원링크

https://note.com/ukiyojingu/n/n12b38553b077

2022년 5월 17일 기사

 

 

참고 링크

윳쿠리 차번극 상표권 등록사건 - 나무위키 (namu.wiki)

 

윳쿠리 차번극 상표권 등록사건 - 나무위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

namu.wiki

 

Dragostea Din Tei - 나무위키 (namu.wiki)

 

Dragostea Din Tei - 나무위키

Ma-I-A Hii, Ma-I-A Hu[4]마이아 히, 마이아 후Ma-I-A Ho, Ma-I-A Ha-Ha마이아 호, 마이아 하 하Ma-I-A Hii, Ma-I-A Hu마이아 히, 마이아 후Ma-I-A Ho, Ma-I-A Ha-Ha마이아 호, 마이아 하 하Ma-I-A Hii, Ma-I-A Hu마이아 히, 마이아

namu.wiki

 

---

 

들어가며

 

ㅤ「안녕하세요, 저번에 전기 계약 관련으로 연락드린 ○○입니다.」

 

ㅤ어제 오전 6시까지 이런저런 작업을 하고있던 나는, 점심쯤에 걸려온 전기 회사의 전화에 잠에서 깼다. 어제도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 때 나는 도서관에 있었으므로 내일 다시 연락해달라고 말했던 사실을 바로 떠올렸다. 내일 점심 즈음에 전화를 달라고 했던 사람은 나였으므로, 수면을 방해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전기 회사의 상품 권유를 한 귀에서 한 귀로 흘려 들었다.

 

유즈하 윳쿠리 영상

ㅤ어제는 12시 반에 눈을 뜨고 14시 반부터 대학 도서관에서의 업무가 있었으므로 나는 아침밥을 먹고 환복한 뒤 출근했다. 당연하지만, 출근 중에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이나 SNS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Twitter에서 발생한 사건을 뒤늦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5월 15일 저녁께, 「윳쿠리 차번극」에 관한 상표 등록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상에 공개되어, 수많은 윳쿠리 영상 투고자들을 휘말리게 한 대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ㅤ유튜브에 투고된 영상과 함께, 많은 댓글들을 확인하고 나는 상황을 이해해갔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설명하기보다는 실제로 영상과 댓글을 확인하는 편이 빠르다. 하룻밤이 지나고, 늘상 불타는 인터넷 세계에 약간의 시시함도 느끼기 시작했던 참에, 댓글에서 재미있는 지적을 발견했다. 2005년에 발생한 「노마네코 소동」에 대한 언급이다. 2022년 지금으로부터 17년이나 지난 옛날 사건과, 지금의 사건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겠지만 확실히 두 사건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개 보인다.

 

ㅤ이번에 발생한 소동과 17년 전 국내 인터넷 문화 환경에서 발생한 소동을 완전히 같은 수준에서 비교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내포한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입각하여 역사를 재확인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에서 아무것도 학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17년 전의 「노마네코 소동」을 재확인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소동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관찰하고, 우리들은 어떠한 의식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노마네코 소동이란 무엇이었는가

 

O-Zone - Dragostea Din Tei [Official Video]

ㅤ2004년, 몰도바 출신 3인조 아티스트 O-Zone이 발표한 앨범 「Dragostea Din Tei」는, 흥겨운 리듬과 MV로 유럽을 기점으로 인기를 끌어모아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다. 해당 악곡의 인기는, 2005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numa numa dance」라는 일종의 밈으로 승화되어 인터넷에서 공유되었다. 그런데, 2005년에 발생한 「numa numa dance」의 세계적 인기는 사실 일본의 인터넷 문화에서 작성된 짧은 플래시 영상(HTML으로 동작하는 릿치 컨텐츠. YouTube나 니코니코 동화 이전의 영상 문화를 이루던 것들)이었다. 해당 플래시 영상은 O-Zone의 노래를 배경으로 일본어 몬더그린 가사에 따라 2채널의 캐릭터 「모나」가 춤추고, 노래하고, 리액션을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악곡 중에 「마이야히」라는 가사가 들린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사랑의 마이야히」라는 이름으로 수용되었으며, 이윽고 2채널을 대표하는 컨텐츠로 흡수되어 당시 매스미디어 상에도 자주 거론되었다. 나도 그러하지만, 당시의 2채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 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마이야히 플래시 영상

 

ㅤ그러나, 이러한 컨텐츠는 2005년 이후 갑자기 쇠퇴한다. 200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인기 컨텐츠가 된 「사랑의 마이야히」를 위시로 한 수많은 영상 컨텐츠들은, 주로 2채널 유저들 사이에서 비영리적으로 수용된 컨텐츠였다. 그런데, 2005년 「사랑의 마이야히」의 인기에 눈독을 들여 컨텐츠를 상표 등록함과 동시에 영리화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하였다. 「사랑의 마이야히」의 일본어판 레코드 복제권을 지닌 주식회사 에이벡스의 자회사는 모나가 춤추고 노래하는 플래시 영상이 세계적 인기를 끌어모으는 것을 좋은 기회라 여겨, 그 이전까지 「모나」라고 불리던 춤추는 고양이를 「노마네코」라고 표기하고 상표 등록하여 이익을 얻으려 하였다. 아마도 그 행동이 불러일으킬 리스크까지는 상표 등록을 시도한 사측은 예상하지 못 했으리라. 2채널 유저들은 해당 행위에 격노하여, 주식회사 에이벡스를 위시로 한 관계자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여, 심지어는 살해 예고까지 나도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건의 전말은, 2022년 현재 「윳쿠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과 흡사하다. 소동은 최종적으로 상표 등록이 단념됨과 동시에 「모나」라는 캐릭터의 독립성이 담보되며 마무리되었으나, 이 문제는 국내 인터넷 문화가 지닌 폭력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에 남아있다. 이것이 이른바 「노마네코 소동」이다.

 

ㅤ그 뒤, 모나가 각종 매스 미디어 상에 긍정적으로 그려지긴 어려워졌고, 「노마네코 소동」의 중심에 있었던 O-Zone의 「사랑의 마이야히」라는 악곡 자체는 주목받았으나, 미디어에서 모나는 구태여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신뢰재를 둘러싼 연대

 

해당 소동은 악곡이 아니라, 2채널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모나」라는 캐릭터를 「노마네코」라는 이름으로 유린한 것에서 기인하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노마네코」에서 「모나」를 지켜냈는데, 대체 왜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 이러한 국내 인터넷 문화와 2채널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도구는, 정보사회학자 하마노 사토시濱野智史가 제시한 「플로우」와 「복붙」이라는 개념이다.

 

ㅤ2000년대 문화 비평의 대표적 저작으로 이름높은 『아키텍쳐의 생태계』는, 2000년대 전반 국내 인터넷 문화의 양상을 그러모아 분석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마노는 당 저서에서 2채널을 「플로우」와 「복붙」이라는 2가지 개념으로 논한다. 전자는 소위 「단골」을 절대로 만들지 않으려하는, 웹사이트의 설계 사상과 맞닿아있다. 2채널의 각 게시판은 게시글이 단속적으로 이어지며,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기 쉬운 메인 페이지에 직접 링크가 표시되는 설계로 구성되었다. 많은 유저가 주목하는 화제가 가장 표시되고 쉽고, 주목받지 못하는 정보가 도태되는 설계는, 오늘날의 인기 트윗이 주목받기 쉽다는 점에서 Twitter의 타임라인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오로지 텍스트로 구성된 2채널은, Twitter가 영상이나 사진을 업로드 할 수 있다는 점과 대비되며 「개인」의 표명 수단이 지극히 부족하다. 당연하지만, 텍스트 사이트로 등장한 2채널은 사진을 게재하기 위해 외부 링크를 경유할 필요가 있는 등, 오늘의 각종 SNS와 비교하면 표현의 폭이 좁았다. 이러한 익명성은 본래 2채널 이전에 존재한 블로그 문화의 「단골」의 배제——단골이 계속 댓글을 남기며 신규 유저가 참가하기 힘들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원을 익명화하는 구조를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게시판 상에서는 오늘날의 발전된 SNS에 비하면 「개인」이 소실되어있다. 이렇게, 게시판의 사용자 전원을 평등하게 다루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ㅤ하지만, 유저들은 개인의 소실이라는 메커니즘을 역설적으로 이용하여 독자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하마노가 지적한 「복붙」이라는 개념이다. 2채널에는 「모나」라는 독자적인 아스키 아트로 작성된 캐릭터나, 「kwsk (쿠와시쿠詳しく = 자세하게 알려달라)는 은어」나 「잇테요시(イッテヨシ 가도 돼) = '죽어라'의 간접적 표현」 따위의 커뮤니티 내에서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있다. 이것들은 선술한 설계 사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유저들이 「2채널 이용자(니챤네라2ちゃんねらー)」라는 거대한 캐릭터로서 협동하기 위한 「신뢰재(사회관계자본)」으로 작용하였다. 신뢰재는 정보 환경 속에서 소실되어버린 유저 개인의 상태를 보완한다. 플로우로 인해 「단골」이 될 수 없게 된, 익명성으로 인해 이름을 박탈당한 우리들은, 이름의 박탈로 생겨난 여백에 모나와 같은 컨텐츠를 채워넣었다. 이렇게 모나는 2채널 이용자들의 신뢰재가 되었다. 바꿔 말하자면, 모나는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2채널 전원의 「이름」인 것이다.

 

ㅤ이렇게 생각하면, 「노마네코 소동」은 2채널 이용자 전원의 「이름」을 박탈한 행위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더더욱 그들은 분노하며 과도한 협박 행위를 전개하였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중인 소동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시간을 17년 후로 돌려보자.

 

 

「윳쿠리 차번극」 소동은 노마네코 소동과 어떻게 다른가?

 

ㅤ17년 전에 일어난 인터넷 문화 상의 대사건을 겪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윳쿠리 실황은 확실히 부분적으로 비슷한 소동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상이한 점도 무수히 많아 보인다. 일례로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 「기업」인가 「개인」인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법인」이 상대였던 17년 전의 소동에 비해, 이번 소동은 개인이 대상이다. 물론, 이번 소동의 배경에 주식회사가 존재한다는 점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본인의 Twitter 계정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개인이 전개하고 있다기보다는 조직 단위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Youtuber 개인의 명의가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음은 명백하며 이 점은 「에이벡스」라는 법인에 대해 유저들이 공격을 감행한 17년 전과 크게 다르다.

 

허나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격적 자세는 17년 전과 비교해 변하지 않았다. 당시, 2채널 사용자들은 주식회사 에이벡스에 서버 공격이나 익명 게시판 상에서의 비방중상을 반복하고, 폭파 예고나 살해 예고까지 나도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이번 소동에서 상표 등록을 진행한 인간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뢰재의 모독은 인터넷 문화사 측면에서 명명백백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기 때문이다.

 

ㅤ17년 전, 2채널을 위시로 한 국내 인터넷 문화는 아직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머물러 있었다. 유저들은 그곳이 사회적 지위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자유롭게 발언하고 의견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여 많은 유저들이 인터넷 문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인터넷 문화는 더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터넷 상의 공격은 과거에 비하여 훨씬 더 섬세한 문제로 변하였다. 17년 전 사회적 문제를 빚으면서도 감내하며 저항하던 2채널의 양상을 Twitter를 비롯한 SNS 상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러한 행위를 「감행해도 되는가」라는 논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누차 말하지만, 이번 문제는 저번과 비교하여 훨씬 더 섬세해진 정보 공간 속에서, 법인보다 훨씬 더 섬세한 대응을 취해야 하는 개인을 상대로 하고 있다. 실제로, 특허 관계의 데이터를 조사하면 개인(*역주 : 유즈하)의 이름을 손쉽게 특정할 수 있다.

 

ㅤ우리는 SNS 상에서, 비방중상에 괴로워하며 자살한 저명인들의 모습을 몇 번이고 보아왔다. 우리는 과거의 비극을 돌아보며, 17년 전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왔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독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경험과 시대의 변화를 토대로, 학습하며 변화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끝마치며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 명장면

 

ㅤ시각은 22시. 업무가 끝나고, 상황을 하루 정도 정관한 뒤, 나는 이 문장을 스마트폰의 테더링 기능을 이용하며 note에 입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17년 전, 과연 「테더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곁에 존재했기는 했는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당시의 나는 국내 인터넷 문화에 대해 동경을 갇고 있었다. 2005년에 일어난 노마네코 소동을 보면서도, 나는 인터넷의 힘이 거대한 권력을 처부순다! 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이상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위에 게재한 디지몬 영화의 한 장면도 그러하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고, 나는 전기료에 관한 전화를 받으며, 매일 컴퓨터를 구동하기 위한 전기료를 온라인 뱅킹으로 지불하고 있다. 당시 내가 동경하던 인터넷 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 사회에의 참가는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그로 인해 벌어진 다양한 알력이, 금번 소동에 반영된 느낌도 든다.

 

ㅤ2000년대부터 2010년대를 지나, 시대는 점차 바뀌어간다. 변화는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이번 소동을 겪고 난 「윳쿠리」는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나는 이번 소동을 보며 하나의 의문점을 떠올렸다. 「신뢰재」를 둘러싼 17년 전의 사건을 반성하며, 윳쿠리 관계자들은 권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인터넷 상의 신뢰재와 관련하여 2005년 노마네코 소동 이후, 컨텐츠의 권리 문제는 보다 확연히 정립되어 갔다. 2007년 이후의 보카로 문화, 나아가서는 피아프로 문화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VOCALOID와 그와 관한 라이센스는 특별한 허가를 받음으로서 문화적으로 꽃피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역주 : VOCALOID 악곡이 일본음악저작권협회에 일방적으로 등록되지 않으며, 제작자가 저작권 사용료 수입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게 한 2007년부터 2017년까지의 일련의 조치가 있었다.) 한편, 동방 Project의 역사도 결단코 짧지 않으며, 노마네코 소동 이전부터 계속 인터넷 문화와 함께해왔기 때문에 해당 문화가 지니는 분위기는 보다 보수적이다. 동방 Project는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컨텐츠이다. 그러므로 더욱 윳쿠리와 관한 컨텐츠는 제도적인 관리를 받지 않고 유지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좋든 나쁘든 「보수적」인 자세의 결과가, 이번 소동으로 귀결되었을지도 모른다.

 

ㅤ앞으로 새로운 제도와 공동체에 의해, 문화가 오래도록 숨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나는 세대적으로 2010년대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2000년대의 인터넷 문화를 더 선호하는 인간이다. 그러니 이렇게 신뢰재가 유린되고 문화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 아주 복잡한 심경이 든다. 한편, 이번 소동을 해결한 뒤에 동방 Project 마니아들이 보여줄 연대와 새로운 문화가 있다면, 그 모습을 아주 즐겁게 관찰하고 싶다. 어찌 되었든 나는 윳쿠리계의 관계자가 아니므로, 이번 사태를 정관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가능성은, 앞으로 있을 윳쿠리 실황자와 동방 Proejct 관련 창작을 지속하는 분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

 

작년 동방계를 달구었던 윳쿠리 차번극 사태와 관한 기사 번역

일본의 마이야히 상표등록 사태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서 재밌게 읽었다.

커뮤니티의 배타적 공기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연대감은 어딜 가나 똑같나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