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픽시브 'ダニエル'님께서 투고하신「너의 이름은. 애프터 시리즈」의 6편 '단풍과 온천과 두 사람의 술자리'입니다.
「너의 이름은. 애프터 시리즈」는 총 18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작자 분과의 협의 하에 번역 뒤 게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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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봐봐 타키군 엄청 커다래-」
「알았으니까 당기지 좀 마!」
쿠사츠 온천¹, 일본에서도 유수의 온천가로 유명한 마을에 타키는 미츠하와 함께 여행을 왔다.
「색깔 예쁘다.. 이거 온천물인거지?」
「응 그런거 같네. 아 저기 설명 써져있네」
「오 진짜다. 에, 뭘까나 뭘까나... 유바타케²라고 하는구나...」
둘이서 함께 떠나는 첫 번째 여행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미츠하는 계속 떠들어댔다.
타키는 즐거워하는 미츠하를 보고 있으니 기뻤지만 계속 말상대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니 기쁜 것과는 별개로 문제이다.
「헤- 밤에는 조명도 비춰준데. 나중에 와볼까?」
「그렇네- 밤에 요 근처 돌아다니는것도 재밌겠네」
「응, 지금도 산책하고 싶지만.. 일단은 방에 짐부터 두고올까?」
2박 3일로 오게 되어서 꽤나 많은 양의 짐을 둘 다 들고 있었다. 이걸 들고 돌아다니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자. 좀 더 걸어가야 하니 가게들 구경하면서 천천히 갈까?」
「응!」
손을 맞잡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미츠하의 발걸음에 맞춰 걸어가며 타키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계속 피어나고 일본식과 서양식 건물들이 죽 늘어서있는 유바타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떤 구조인지 궁금한 건물도 몇 군데 있었지만 천천히 보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도로로 들어선 두 사람은 기념품점이나 음식점을 구경하면서 걸어간다.
「아, 온천만쥬. 진짜 파는구나」
「사갈까?」
모처럼 온천에 왔으니 많이 먹어둬야겠지. 그렇게 생각해 한 가게를 가리키는 타키의 눈앞에 갑자기 만쥬가 나타났다.
「거기 가는 두 사람, 괜찮다면 한번 먹고 가봐, 그리고 맛있으면 사가주고」
「에?」
어쩌다보니, 라는 느낌으로 손을 내뻗는 미츠하. 손바닥에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쥬가 두 개 놓인다.
「에.. 그..?」
어, 어쩌지? 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의 미츠하. 그렇게 쳐다봐도 타키도 온천마을은 처음으로 와보는거라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시식이야 시식. 봐봐, 가게들 다 하고 있잖아?」
만쥬를 집었던 집게로 딱 딱 소리내며 아저씨가 가리킨 곳에는 만쥬를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 시식이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만쥬를 공짜로 2개나 건네주면서 이익이 날지 조금 걱정이 된다.
「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미츠하가 그렇게 말하니 점원이 씩 웃고선 다음 손님을 찾으러 갔다. 이미 받아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미츠하는 만쥬를 타키군에게 내민다.
「에.. 자, 타키군」
「으, 응. 고마워」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만쥬를 받아 입으로 옮긴다.
「우옷, 맛있어...」
「응, 맛있다아!」
평소 생활에서는 따뜻한 만쥬같은 건 거의 입에 대본 적도 없으니 비교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이건 꽤나 맛있었다.
알맞게 부풀어오른 빵과 따뜻하면서도 입에서 녹아내리는듯한 팥소가 그 단 맛을 더 돋구아줘서 긴 이동으로 지친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옆을 보니 미츠하도 눈을 반짝거리면서 냠냠거리며 만쥬를 먹고 있었다.
옆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얼굴. 부드러워 보이는 볼을 살짝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가며 타키도 만쥬를 다 먹어버린다.
「맛있었다... 설마 그냥 원래 사이즈로 줄 줄은 몰랐는데」
「어, 진짜 놀랐어. 그래도 그 이상 먹어버리면 저녁밥 못 먹을듯한데.. 」
「아하하, 그러겠네. 그러고보니 내일 점심은 어떻게할까? 가게들은 되게 많은거 같은데..」
「음.. 역시 유명한거 같은데 소바는 어때?」
걷고 있기만 할 뿐인데 몇 번이나 소바 집을 봤다. 사전에 조사해봤을 때에도 평판이 좋은 소바 가게가 너무 많아서 결국 못 정했을 정도였으니..
「음 소바는 좋아하니까 타키군이 원하는 가게로 괜찮지만... 그 대신, 기대해봐도 좋은거지?」
「으아.. 책임이 막중해졌구나, 일단 후보는 어느정도 정해놨으니까 가게 가보고 정해야지 뭐」
「응, 알았어. 아, 숙소 저기 아니였나?」
미츠하가 길 끝을 가리킨다. 단풍으로 둘러싸인 간판에 쓰여있는 료칸의 이름은 확실히 예약해놨던 곳이었다.
「오, 진짜네. 그렇게 멀지 않았구나」
「응. 셔틀버스도 다니는 거 같던데 이 정도면 걸어올만 하네」
들떠서 걸어가는 미츠하와 함께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간다. 예쁘게 정돈되어있는 현관 자동문을 지나니 프론트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서오세요, 온천장 ‘사계의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에 오늘부터 2박 일정으로 예약해뒀던 타치바나입니다.」
「타치바나 님이시군요..... 넵.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갖고 오신 짐들 맡아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어느새 나타난 남자 종업원에게 짐을 건넨다. 두 종업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예약해뒀던 방에 도착한다.
「이 방입니다. 열쇠는 카드식으로 되어있으므로, 외출하실 때에는 프론트에 맡겨주세요. 저녁식사는 5시 반부터 7시까지로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여성 종업원이 문을 닫는다. 둘만이 남은 곳에서 미츠하는 방을 둘러보며 놀람의 한숨을 내쉬었다.
「.... 뭐랄까... 엄청난 방이네..」
「응, 돈 쓰길 잘했네」
솔직히 상상한 것 그 이상의 방이다. 발코니가 붙어있는 방에 노천탕도 딸려 있었다. 타키와 미츠하의 수입으로 미루어보면 꽤나 비싸지만 무리해서 잡은 방이었다.
「소파도 진짜 부드러워...」
「침대도 푹신푹신하네. 더블 침대는 이렇게 컸구나」
평소에는 세미더블 침대에서 자고 있는 타키는 솔직히 너무 커서 오히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침대에 뛰어들어보니 부드러운 이불이 몸을 감싸주었다.
「진짜. 아, 단풍도 잘 보이네」
침대를 등지고 선 미츠하가 일어서서 발코니 문에 다가선다. 타키가 고개를 돌려 발코니를 보니 확실히 밖으로 예쁜 단풍이 보였다.
「아, 진짜다. 헤- 예쁘다..」
타키도 미츠하를 따라 일어서서 발코니로 다가선다. 미츠하가 문을 여니 살짝 차가운 바람이 실내로 불어온다.
「음- 좀 춥긴 하네.. 아 맞아. 밖에서 차 마시지 않을래?」
「아, 그거 좋겠네. 뜨거운 물도.. 준비되어 있구나」
보온병을 열어보니 이미 뜨거운 물도 끓고 있어서 차 끓이기도 가능했다. 밖으로 주전자 등을 가지고 나온 두 사람은 발코니 의자에 앉아 차를 끓인다.
「자 타키군」
「떙큐」
적당히 따뜻한 찻잔에 손이 닿아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미츠하를 보니 찻잔을 손에 들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진짜 단풍 예쁘다...」
「그러고보니 이토모리도 단풍 예뻤었지」
사당에 봉납하러 갔던 때를 떠올린다. 그 때 저녁노을과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던 이토모리의 모습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산밖에 없었으니까 뭐, 그래도 좀 그립긴 하네」
「응. 그리워..」
홀짝 홀짝 차를 마셔가며 잠시 단풍나무들을 올려다본다.
미츠하와 함께 있으면 가끔씩 이렇게 느긋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때가 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오며 생각해본 적도 없는 시간을 쓰는 방법이었지만, 타키는 이 시간이 정말 좋았다.
멍하니 있는 미츠하는 귀엽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언제나 귀엽지만. 미츠하가 자기 앞에서 편안히 쉬어 주는 것만으로 타키는 너무도 행복해진다.
단풍으로부터 눈을 돌려 미츠하를 본다.
나무들 사이로 시선을 옮겨감에 따라서 살짝 흔들리는 미츠하의 머리카락도 찻잔을 쥔 작은 손가락도,
아무렇지도 않은 미츠하의 모든 것, 모든 행동들을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속이 가득 채워져간다.
「응? 왜 그래?」
「아니, 이러고 있는것도 좋은거 같아서」
「이러고 있는거?」
「응. 미츠하랑 같이 그냥 느긋이 시간을 보내는게 좋아서」
「... 나도, 타키군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아」
그렇게 말하며 수줍어하는 미츠하는 분명 나랑 같은 기분이겠지. 타키는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구나, 기뻐. 미츠하는 단풍같은거 좋아했구나」
「어느정도 좋아하지. 이토모리에 있었을 때에는 너무 많이 봐서 잘 몰랐는데, 도쿄에 와보니까 볼 기회 자체가 줄어들어서..」
「뭐 도쿄에는 예쁜 단풍같은거 별로 없으니까..」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여기도 그 때 이토모리의 풍경처럼 주위가 온통 단풍으로 가득 찼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그리워지는 거겠지.
「확실히 그렇네.. 나도 갑자기 그리워지네. 이토모리에 있던 건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타키군도 그렇구나.... 음, 뭐랄까 우리들, 다른 곳 출신이지만 이토모리를 함께 그리워할 수 있다는게 좋네」
그럴지도 모른다. 타키는 도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까, 이토모리를 알기 전까지 향수라고 하는 감각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도 하네... 그보다, 좀 춥지 않아?」
「조금 춥네. 슬슬 들어갈까」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 역시 춥다. 타키와 미츠하는 다 마셔버린 찻잔을 쟁반에 놓고 방으로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저녁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앞으로 한시간 반이라.. 뭔가 좀 애매한 시간이네」
「이제 뭐할래? 기념품 보는것도 좋지만.. 아예 일찍 온천이라도 가볼까?」
「아, 그게 좋겠네. 24시간 한댔지 분명히?」
그래, 모처럼 온천에서 묵는 거다. 온천에 몇 번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손해라고 오기 전부터 계속 말했던 건 미츠하다.
「그럼 일단 대욕탕부터 가볼까?」
「응 나도 그게 좋아. 방에 있는 온천탕은 언제든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럼 결정이네. 에 목욕타올이 아마..」
좋은 일은 서두르라고 짐을 풀어 필요한 것들을 꺼낸다.
사실은 둘만이 쓸 수 있는 노천탕³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여러모로 참지 못하게 되버릴까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위험하다.
「좋아. 이정도면 되려나, 미츠하는 준비 다 되가?」
「응, 거의 다 챙겼어. 아- 빨리 가고싶다!」
「음, 그럼 가볼까. 그나저나 너 진짜 목욕 좋아하는구나. 아, 그러고보니 너 바뀔 때에도 목욕 했었지?」
「에? 음.. 그랬었나..?」
「아, 그냥 얼버무리긴. 뭐 됐어. 그럼 이따 보자」
「응 방에서 보자-」
미츠하와 헤어져 욕탕으로 향한다. 분명 지금쯤 미츠하도 기분좋게 걸어가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니 무심코 빙그레 웃어버리는 타키였다.
「하아, 너무 많이 먹었어..」
유바타케의 길을 걸어가면서 미츠하는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옆에 걸어가는 타키도 마찬가지인듯해서, 기분 탓인진 몰라도 평소보다 더 구부정하게 걸어간다.
「아니 그건 많이 먹어도 어쩔수 없어어.. 고기 진짜 맛있었다-」
「응, 그렇게 부드러운 고기 처음 먹어봤어. 거기에 그 디저트...」
생각한 것만으로 미츠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다.
제철 머루와 대봉으로 만든 크림 위에 젤리를 올리고 설탕을 뿌린 호화로운 디저트는 적당히 달콤시큼해서 기름진 식사 후에 딱 알맞았다.
「미츠하가 내거 하나 가져가버렸지만..」
「타키군이 남긴게 나쁜거지롱-」
「그건 남긴게 아니라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둔거라고! 하여튼, 단거만 있으면 앞뒤를 안 가려 너는」
「무, 무슨 그런 말을! 그리고 타키군한테 고기 좀 줬잖아」
타키가 하나 일부러 남겨놓은 머루 젤리를 그냥 먹어버린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에 타키한테 고기를 좀 주긴 했으니까 쌤쌤이라고 생각한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뭐 됐나. 맛있었지?」
「응, 맛있었어. 고마워 타키군」
「그래, 감사해줘야지」
그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니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기념품 가게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는 구역에 들어섰다.
주변을 보니 미츠하와 마찬가지로 온천에 들어갔다가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헤에, 밤이 되니까 분위기가 좀 달라지네. 기념품 중 먹을거는 마지막 날에 사야겠고... 여기 유리 세공으로 유명하댔지?」
「응, 여러 도구나 장식품 팔고 있는거 같더라. 온 김에 식기 같은것도 사가고 싶네」
「괜찮지 않겠어? 컵 같은건 예비로 좀 사둬야 좋을거같고」
「진짜? 아싸- 그럼 유바타케 반대쪽에 있는 거 같으니까 겸사겸사해서 보러 가볼까?」
가족에게 보낼 기념품으로도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 요츠하는 그런데 돈 쓰지 말고 만쥬나 사오지 라고 말할거 같지만.
「좋아, 어, 보인다 보인다!」
「우와아... 예쁘다....」
광장으로 들어선 미츠하는 눈앞의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물이 흐르는 길을 파랑이나 빨간 조명이 교차해가며 서로 비추어, 땅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그 빛에 비춰져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합류하는 온천수는 하늘색으로 빛나는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그 폭포를 받아들이는 샘에는 빨간 빛 조명이 비추어지고 있어서,
맑게 흐르는 하늘색 물이 붉은 샘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물의 색이 정말로 변해가는듯한 착각을 주었다.
「이야.. 상상 이상이구나..」
「응...」
말이 안 나오는 장관이란건 이런 거구나. 입을 앙다문 둘은 유바타케로 다가서서 그 광경을 눈에 새기며 그저 그 모습에 홀리고 있었다.
밤인데도 사람이 이리 많은건 아마 이걸 보기 위해서겠지.
분명히 유바타케는 쿠사츠에 왔다면 무조건 봐야하는 경치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나도 멋들어진 풍경에, 미츠하는 무심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 꿈만 같은 모습이라, 그래서 타키가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타키군...」
「왜?」
제대로 대답이 돌아온다. 응, 괜찮다. 타키는 내 옆에 잘 있다.
「아니야, 그냥 불러봤어. 타키군이 제대로 있나 해서」
「... 응. 있어」
타키가 손에 힘을 주어서, 미츠하도 그것에 대답하듯 손을 꼭 맞잡았다.
「좋네, 여행」
「응, 좋네」
잠시동안 그대로 유바타케를 바라본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흘러가는 물소리도, 마치 두 사람을 둘러싼 BGM과 같았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저 풍경과 타키군의 온도를 느끼고 있던 미츠하였지만, 갑자기 산책을 나온 이유를 생각해냈다.
「아, 쿠사츠 유리세공」
「으아! 까먹고 있었다. 에, 음. 아직 하고 있는거 같은데, 가볼까?」
「응. 가자!」
살짝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파를 헤치고 광장에서 나오니 방금까지 들려오던 소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고요한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거려나」
보이기 시작한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러 가게들이 늘어서 있지만 저 가게가 그릇 등을 취급하고 있던 가게였다.
「오, 온천수로 삶은 계란도 파는구나」
「진짜네, 뭐 지금은 먹기 좀 힘들겠지만..」
「그렇지, 일단은 들어가볼까」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식과 양식이 섞인듯한 내부 장식과 끝에서부터 끝까지 유리그릇으로 치장된 선반.
그릇 하나 하나가 다양한 크기와 색으로 준비되어 있어 가게 안쪽까지 늘어져 있었다.
「엄청 많네- 아, 봐봐 타키군. 컵도 종류 다양한거 같아」
「오, 색깔만 다르게 해둔것도 있네..」
「우리가 쓸거 커플로 맞추는 것도 좋겠네. 술 마실 때 쓸 도자기 잔도 괜찮겠어」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많아서 여기저기 눈길을 옮기고 다닌다.
미츠하는 그릇에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예쁘면 역시 몇 개 갖고 싶어진다.
「아, 온천 유리 세공이래. 이렇게 예쁜 하늘색⁴이 되는구나..」
「아니 대체 얼마나 살 생각인거야. 집에 그렇게 둘 자리도 없잖아」
「알고 있어- 으음. 그러면 사람당 두 세트 정도로 해야하나..」
기왕 사는거 몇 개를 비교해본다.
색깔만 다른 컵을 쌍으로 맞춰 세트로 사고, 나머지 하나는 뭘 살까, 술 마실 때 쓸거면 도자기 잔이 좋으려나, 아니면 조그만 컵이 좋으려나, 둘 다 마음에 들어서 고민하고 있다.
「있잖아 타키군, 어느 게 나아보여?」
어떻게든 후보를 2개로 줄여 타키군에게 보여준다.
「음, 둘 다 에쁘긴 하네.. 쓰기 편한건 이 유리잔 쪽이 좋아보이긴 한데..」
「응?」
「아니 그러면 둘 다 사서 그냥 그날 기분따라 맞춰서 쓰자」
「타키군이 그래도 괜찮다면 그렇게 할까!」
살짝 위를 쳐다보니 타키가 웃으며 끄덕거린다.
「아싸! 그럼 이제 아빠거랑 할머니거랑..」
집에서 쓸 거를 다 골랐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한테 선물할 걸 고를 차례다.
그러고보니 텟시와 사야찡에게 주기에 괜찮을듯하다.
그러면 가장 귀여운거 골라서 선물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미츠하는 다시 상품 진열대를 찬찬히 돌아본다.
혼자 심심할텐데 괜찮으려나, 하고 타키를 돌려다보니 아무래도 내부 장식 쪽이 어떤지 신경 쓰이는지 천장이나 벽을 뜯어보고 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내버려둬도 괜찮겠지.
천천히 진열대를 살펴봐 겨우 상품을 다 고른 미츠하는 기둥까지 흔들어보는 타키에게 다가선다.
「타-키군, 다 봤어?」
「아, 맞다, 나도 슬슬 골라야..」
「아냐, 다 골라놨어. 자 여기!」
가장 긴 시간을 들여 고른 깔맞춤 유리잔,
타키의 컵은 옅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미츠하는 짙은 하늘색으로 칠해져있다. 손에 딱 알맞은 크기로 쓰기에도 편해보였다.
나뭇잎과 물이 새겨져있는 그 유리잔을 맞대어본다. 색깔도 맘에 들었지만 미츠하는 그 컵을 보고 어쩐지 타키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타키는 미츠하가 고른 그 잔을 보고, 미츠하를 떠올려줬으면 했다.
「오, 괜찮네. 역시 미츠하 보는 눈이 있네」
「에헤헤, 타키군 취향은 이제 대충 다 알겠으니까!」
그 의도까지는 전해지지 않았나 하고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해주어서 다행이다. 내심 살짝 한숨을 내쉰 미츠하는 계산을 끝내고 포장된 컵을 든다.
행여나 깨질까봐 조심조심 료칸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던 중 유바타케를 지나가는데 아직도 조명이 비추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아까 전보다 더 늘어 있었다.
광장 바깥쪽으로 돌아 인파를 피해 숙소에 도착할 때에는 벌써 시곗바늘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럼 되겠지」
깨지지 않도록 유리잔을 선반 안에 잘 옮겨놓는다. 여기 두면 지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괜찮겠지.
「시간도 딱 적당한데 또 욕탕 들어갔다가 오늘은 이만 잘까?」
「그래야겠네.. 아, 그러고보니 그... 우리만 쓸 수 있는 노천탕이 있는거 같던데, 알고 있지?」
흔히 가족탕이라 불리는 노천탕인데, 이 료칸의 욕탕은 다른 곳들과는 다른 독특한 멋이 있는 모양이다.
돌, 대나무, 편백나무 세 종류가 있어 이왕 온 김에 다 들어가 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에, 그럼 설마...」
하지만 거기 가자고 하는건, 뭐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거다. 아직 목욕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미츠하는 뺨을 빨갛게 붉히고 있다.
「진짜, 너무 다 말하게 하지 말라고..」
「아, 응 미안. 그럼 그... 들어가볼까」
「..... 응」
서로의 몸을 보는 게 처음인건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함께 욕탕에 들어간다는 건 역시나 부끄럽다.
허겁지겁 들어갈 채비를 하고 방을 나선다. 빨리 들어가고 싶다- 라던가 어느 욕탕부터 들어가볼까? 하는 이야기도 할 법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는다.
「아, 에... 지금 쓸 수 있는건 편백나무탕뿐인거같네.」
「응. 거기로 괜찮지?」
「난 뭐 어디든지 상관 없는데...」
단편적으로 그런 이야기만 조금씩 이어가며 들어선다.
탈의실은 나뉘어져 있어서 미츠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옷 갈아입는걸 보이는 건 조금 부끄러웠다.
「그럼 이따 안에서」
「응, 아, 먼저 들어가 있어도 괜찮아」
탈의실에 들어간 미츠하는 유카타의 오비를 풀고 잘 개켜 바구니에 넣는다.
일단 커다란 타올을 들고 와서 몸을 가릴 수는 있지만, 욕탕 안에 들어갈 때에는 결국 풀어야 한다.
「하아... 역시 안 오는게 나았으려나... 그래도 기껏 이렇게 예약해뒀는데..」
그래, 애초에 이 료칸을 고를 때부터 알고 있던 거다. 부끄럽지만 아마 타키도 마찬가지겠지. 자기만 부끄러워서 주저하면 연상으로서 체면이 안 선다.
「... 좋아」
미츠하는 각오를 다졌다. 괜찮을거야, 그래도 타올은 두르고 가자.
몸에 둘둘 타올을 제대로 두르고 미츠하는 욕실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아, 꽤 넓구나」
가족이 쓰는 걸 상정해두고 여러 명이 쓸거라 생각한건지 두명이 들어가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욕실이었다.
「어, 미츠하 왔어?」
「응. 생각보다 꽤 넓네」
타키는 등을 돌리고 샤워기로 몸을 깨끗이 닦고 있었다.
다행이다, 일단 몸을 닦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수 있을듯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도 일단 씻을테니까, 이쪽 보지마? 절대로?」
「아, 알았어. 다 끝나면 말해」
이렇게 말해두면 괜찮겠지. 타키와 반대쪽의 샤워기 앞에 앉은 미츠하는 재빨리 몸을 닦는다.
밤이 다 되도록 땀을 흘릴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니 구석구석 씻을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너무 오래 씻어버리면 타키에게 미안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 뒤에 타키랑 온천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미츠하는 결국 무의식적으로 꽤나 오래 씻고, 다 씻어갈 쯤 타키는 이미 샤워를 끝낸지 오래였다.
「에, 좀만 더 저쪽 봐줘..? 탕에 들어갈 때에는 타올 두르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아, 응. 어쩔 수 없네 그럼」
타올을 몸에서 떼어내 개어 욕실 가장자리에 둔다. 투명한 목욕물로는 아무래도 몸을 가리기 어려울듯하다고 생각하면서 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최소한의 저항의 표현으로 팔로 가슴을 가린 미츠하는 뒤를 돌아보고 타키에게 말한다.
「이, 이제 괜찮아.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아니 뭐 괜찮아. 들어갈게」
미츠하의 왼편으로 타키가 들어온다. 살짝 조심하고 있는건지 약간 떨어진 거리. 타키가 들어오며 물이 살짝 온천 밖으로 흘러넘친다.
「이야, 기분좋네..」
「응. 이렇게 넓은데 우리 둘만 있다니, 뭔가 좀 사치를 부리는 느낌도 들고..」
「그렇기도 하네」
철썩, 하고 타키가 웃는 몸짓에 맞춰 온천물이 흔들린다.
「아, 별...」
눈을 어디에 둬야할 지 모르겠어서 시선을 위로 올린 미츠하의 눈에 별로 가득한 밤하늘이 비추인다.
역시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도쿄에서 보이는 밤하늘과는 격이 다르다. 미츠하의 말에 타키도 하늘을 올려다 바라본다.
「진짜네, 와 엄청 많네...」
「응, 이런 밤하늘 보는거 오랜만이네」
그 날의 밤하늘이 떠오른다. 하지만 하늘에는 꼬리를 흐뜨리던 혜성이 아니라 멀리서 빛나는 별들만이 반짝거리고 있다.
「그렇네, 이토모리에서라면...」
「응, 언제나 이런 밤하늘이었지. 그래서 좀 반갑기도 하네」
「그렇구나」
그 말을 하고 타키는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여간다. 어깨가 닿을 정도의 거리. 미츠하는 몸을 살짝 기울여 타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용하네..」
「뭐, 우리 둘만 있으니까」
그저 그렇게 하늘을 바라본다.
옛날에 보았던 별이 총총이 박힌 이토모리의 하늘에 향수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츠하가 지금 그립다고 생각하지 않는건 분명 타키의 온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몇 분이라는 느낌도 들고 한 시간 가깝게 지났다는 느낌도 든다. 미츠하는 하늘로부터 눈을 돌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보이는건 부끄러우니까..」
「에?」
미츠하는 앉아있는 타키의 앞쪽으로 다가가, 기대앉았다. 이렇게 하면 서로의 몸은 보이지 않을테니까.
「에헤헤, 이러면 부끄럽지 않겠지?」
「아니... 이건 이것대로 더 부끄럽지 않아? 뭐 상관없지만..」
타키의 팔이 미츠하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이런 자세는 지금까지 곧잘 해왔으니까 괜찮을거라고... 미츠하는 생각한다.
「아, 이상한 데 만지지 마-?」
「아, 안 만져! 아무리 그래도 이런 데에서는 좀...」
「하여튼, 무슨 생각 하는거야」
머리를 뒤로 젖혀 가슴팍에 살짝 부딪치게 해 항의의 표시를 한다.
「그건 그렇고 진짜 예쁘네.. 방에 있는 노천탕에서도 잘 보일 테니까 달구경하면서 술도 마실 수 있겠네」
「아, 나도 온천물에다가 쟁반 띄워놓고 술 마시는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내일 해볼까?」
「오, 아까 샀던 컵들 써서!」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무수한 별들과 단풍을 보면서 술을 홀짝거리다니. 그런 분에 넘치는 일은 그리 쉽게 하지 못하겠지.
「우웅- 기대된다! 있잖아 타키군은... 에 타키군!!!」
고개를 돌린 미츠하는 큰 소리를 내고 만다.
「응?」
「응? 이 아니라, 코피 나잖아!」
주르르 타키의 얼굴에 피가 흘러내린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탕에 들어와 있던 걸까.
「우오, 진짜다. 에 이럴 때에는 일단 탕에서 나가야하나..?」
「아, 아마 그러고, 그 다음엔 다음엔... 머리를 위로 치켜드나...??」
애매한 지식을 어떻게든 떠올려본다.
당황해서 탕에서 나온 타키는 허리춤에 타올을 두르고 편백나무 울타리에 기대 손으로 코를 막는다. 미츠하도 타올을 급히 걸치고 상태를 살펴본다.
「괜찮아?」
「아직 좀 나는거같아. 아 맞다, 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지는거 아닌가?」
라고 말했지만 여기는 온천탕, 벤치는 있지만 거기에 그냥 누우면 머리 위치가 낮아져서 별 소용이 없다.
베고 있을만한 건.... 미츠하는 하나 적절한 게 생각난다.
「이, 일단은 여기. 응. 여기 머리 눕혀」
「에?」
벤치에 앉은 미츠하는 자기 허벅지를 두드린다.
솔직히 타올 하나 겨우 걸치고 무릎베개라니 부끄러워 죽을거 같지만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아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나.. 난 괜찮으니까... 빨리!」
「미, 미안...」
쭈뼛주뼛 타키가 몸을 눕힌다.
「흐읏...」
「에 왜그래?」
「아니, 조금 놀랐을 뿐이니까 괜찮아」
타키의 머리카락이 닿아 목소리가 나와버린다. 콕 콕 찌르는 머리카락이 맨살에 닿으니 약간 간지럽다.
「그래도 이거 좀... 아니, 솔직히 꽤 부끄러운데...」
「나, 나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좀 안정시켜야 나아지니까... 그리고 무릎베개는 저번에도 해줬었으니까..」
「그렇긴 한데.. 뭐 괜찮나, 바람도 기분좋게 불어오고..」
온천으로 달아오른 살갗을 밤바람이 간지럽힌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은 오랫동안 온천 속에 있던 몸에 딱 기분 좋게 와닿았다.
「좀 오래 들어가 있었나보네」
「응, 미안. 코피 평소에는 거의 안 나는데..」
미묘히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는지, 눈동자가 계속 돌아가는 타키의 얼굴에는 확실히 약간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아마 미츠하의 얼굴도 아마 새빨개져있을 테지만, 부끄러워하는 타키가 너무 귀여워서, 타키가 점점 더 사랑스러워져만 간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미츠하 꽤 있구나」
「잠깐, 어딜 보는거야!?」
「아니 뭐 어떻게 해도 시야 안에 들어오는데...」
「그, 그건 그렇겠지만...」
그렇다 해도 일부러 말할 것까진 없지 않나, 애초에 그리 큰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뭐 시야 안에 들어와서 좋지만.. 슬슬 멈춘거 같으니..」
「히얏, 가, 갑자기 움직이지 말라고!」
「아 미안. 그리고 이제 멈췄으니까 괜찮아」
타키 머리카락의 감촉에 또 이상한 목소리를 내버린다. 부끄러워 굳어버린 미츠하 옆으로 타키가 일어난다.
「그, 그러면 뭐... 으음, 확실히 멈췄네」
미츠하가 타키의 얼굴을 살짝 만져보고 확인한다.
사실은 조금 더 무릎베게를 베고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그 이상 계속했다면 미츠하가 코피를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럼 돌아갈까, 아무래도 돌아가면 바로 자야겠지?」
「응, 꽤 피곤하니까..」
옷을 갈아입고 프론트에 온천 정리를 부탁드린 뒤 방에 들어와 내일 일정을 확인한다.
일어날 시각에 알람을 설정해둔 타키와 미츠하는 이제 늦었으니 전등을 끄고 침대에 눕기로 했다.
「.... 침대, 진짜 크네」
「혼자 자면 양 팔을 다 벌려도 남을 거 같은데,」
실제로 침대에 올라와보니 그 넓이를 더욱 실감한다. 왜냐하면 타키에게 달라붙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넓으니까.
집에 있는 침대가 그리 작지는 않지만... 이 침대의 넓이를 알고 나니 더더욱 작아 보이는걸지도 모른다.
「음... 타키군, 조금 더 그쪽으로 가도 돼?」
「에, 이렇게 넓은데?」
「응, 타키군한테 꼭 붙어 있어야 잠이 잘 오는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츠하는 타키가 대답하기도 전에 몸을 돌린다.
타키의 몸에 닿은 손가락 끝에서 마치 타키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미츠하의 체온도 점점 올라간다.
「뭐 상관은 없는데.. 후아.. 이 침대 진짜 푹신푹신하네...」
「응..」
「으-음, 잘 자 미츠하...」
서서히 타키의 목소리가 작아져 간다. 미츠하의 눈꺼풀도 점점 더 무거워져서 저항은 어려울 듯 했다.
「응, 잘 자 타키군」
미츠하도 잠결에 그리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타키가 말한 대로 푹신푹신한 침대는 미츠하의 몸에 작용하는 중력까지 삼켜버리는 듯해, 미츠하는 의식의 끈을 놓고 잠에 빠져버렸다.
그 다음날은 말 그대로 관광객다운 하루였다.
유리공방 체험도 하고, 쿠사츠 온천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한나절동안에만 온천 다섯 곳을 들어갔다 나왔더니 쭈글쭈글한 손가락이 펴질 틈이 없다.
미츠하는 이런 노인분들이 좋아할법한 관광계획에도 꽤나 만족하는 타입이지만, 지금은 타키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
미츠하는 료칸에서 전신미용 서비스를 받고 있고 그 사이에 타키는 괜찮은 술을 적당히 골라 이 뒤에 있을 술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역시 이왕 마실거라면 일본주가 좋겠지」
료칸 안에 있는 찬장의 일본주를 보며 타키가 중얼거린다. 숙박시설 안에 있는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물건이 갖추어져 있어 이것저것 찾아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다.
「음, 너무 도수 높은건 좀. 아, 매실주도 걔가 좋아했는데.. 」
타키는 그다지 단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매실주 정도라면 허용범위 이내이다.
너무 많이 사면 다 마시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며 타키는 꽤 오래 가게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주가 나을거같다고 했으니 역시 일본주로 가야하나, 그러면 이게...」
‘나카구치’라는 상표가 붙어있는 술을 한 병 들어올린다. 쿠사츠 지역의 토산주인지 겉면에는 ‘쿠사츠’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도수도 그리 높아보이지 않고 이거면 괜찮으려나」
어차피 술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점원 분이 권하고 있는 이거면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해 두 병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타키는 아까 샀던 술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소파에 앉는다.
휴대폰을 꺼내들어 일기를 적고 있는데 방문을 열고 싱글벙글한 미츠하가 들어온다.
「갔다왔어 미츠하? 어땠어?」
「응, 진짜 진짜 좋았어- 타키군은 술 잘 골랐어?」
「나카구치라는 토산주로 사왔어, 지금은 냉장고에 들어있고」
일어서서 냉장고에서 술병을 꺼내들어 상표에 ‘토산주’라고 쓰여있는 부분을 보여준다.
「와, 맛있겠다! 에, 그러면 들어갈...까?」
「으, 응」
둘 다 방금 전에 대욕탕에서 몸은 씻고 나온 참이라 몸에 물을 끼얹기만 하고 온천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이다.
탈의실이 좀 좁아 미츠하가 먼저 안에 들어가고 타키는 미츠하가 욕실에 들어간 뒤 옷을 벗기 시작한다.
「이 물은 살짝 색이 흐리네」
「응. 이러면 그다지 부끄러우지 않으려나」
미츠하는 물속에서 어깨만 드러내고 점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타키도 어서 들어오래서 미츠하와 마주보는 위치에 목만 내놓고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아- 대체 오늘만 몇 번을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온천은 역시 기분좋네..」
「후후, 뭔가 타키군 아저씨같아. 그러면 쟁반그릇 띄워놓고...」
겨드랑이에 끼우고 있던 그릇을 물 위에 띄우고 어제 샀던 도자기잔과 유리잔, 그리고 아까 산 술을 따라 넣어놓을 호리병을 놓는다.
술병을 놓으면 아무래도 무거워서 잠겨버릴거 같아 술병은 온천 가장자리에 놓아두었다.
옆을 돌려다보면 조명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단풍과 반짝이는 별과 달이 반긴다. 너무도 호화로워 어디를 봐야 좋을지 모르게 되버린다.
「자, 타키군 받아」
「응.. 오케이 그정도. 그럼 미츠하도」
「고마워」
차가운 일본주를 따라내 잔을 든다. 건배라고 외칠 것도 없이 살짝 잔을 맞댄 뒤 입술에 갖다댄다.
「아, 맛있다」
「응, 맛있네」
딱 좋게 찬 기운이 감도는 일본주가 따땃한 몸 속으로 퍼져나간다. 깔끔한 뒷맛과 은은한 향기로 마시기 좋은 술이다.
「맛있는 술에 예쁜 풍경에 타키군까지.. 행복하다...」
「하하, 고마워. 그나저나 단풍은 조명을 받으니 더 에쁘네..」
비어버린 미츠하의 술잔에 술을 더 따르며 주변 경치를 둘러본다.
빛을 받고 있는 단풍은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바뀌고 그림자가 서로 대비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응, 뭔가 로맨틱해. 술도 진짜 맛있고..」
「확실히 맛있긴한데 너 치고는 꽤 빨리 마시네,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론 안 취해- 그나저나 따뜻한 물속에서 이렇게 시원한 술 마시는게 이렇게 좋을줄은 몰랐네」
아무래도 미츠하도 타키와 같은 감상에 취해있는 듯 했다. 고민해서 술을 고란 보람이 있다.
「마음에 들어해줘서 다행이다..」
「에헤헤, 맛있어서 계속 마시게 되네, 자 타키군도!」
「응, 고마워」
미츠하가 다시 술을 따라준다. 그걸 받고 있던 중 호리병이 다 비어버린다.
「아, 다 따랐나보네. 더 넣는다?」
「응, 벌써 다 마신건가」
역시 페이스가 평소보다 빠르다. 하지만 뭐 숙소 안이니 미츠하가 취하면 내가 데려다 눕히면 되겠지.
「오케이, 이 호리병도 뭔가 귀엽네. 잔도 예쁘고..」
호리병은 술을 살 때 빌린 것인데 온천 마크가 박혀있어 묘하게 귀엽다.
미츠하는 달빛에 비추어보듯이 술잔을 들어올렸다. 짙은 하늘색 잔이 달빛을 반사해 살짝 빛난다.
「그거 진짜 맘에 들었나보네」
「응, 고마워. 이거 예쁘잖아, 타키군은 그거 맘에 안들어?」
「아니, 나도 마음에 들어. 푸른 계열 색들 좋아하니까」
타키도 미츠하를 따라 잔을 들어 달빛에 비추어본다. 잔 안에 담긴 달빛이 흔들려 마치 등불같다고 타키는 생각한다.
「에헤헤, 그럼 다행이다. 아, 단풍이」
단풍이 온천으로 떨어진다. 타키는 그 단풍으로 손을 뻗는데
「앗, 미안」
마찬가지로 손을 뻗은 미츠하와 손이 닿아버려 다시 손을 거둔다.
「그렇게 바로 손 뺄건 없잖아.. 우우..」
「아니 그냥, 근데 너 설마 취했어?」
「음... 안 취했어..? 아 맞아」
안 취했다는 듯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분명히 취해있다. 그걸 증명하려는듯 뺨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집에서 취해서 엄청나게 달라붙었던게 생각난다.
설마 벌써 그 정도로 취해버린건가, 따뜻한 물에 덥혀진 술이 몸에 돌아 취하기 쉽다고는 하지만 약간 빠른 감이 있다.
「타키군이다-」
미츠하는 그렇게 말하며 물에 떠있는 그릇이 쓰러지지 않도록 살짝 물리면서 타키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접근해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 회전이 되질 않는다.
그 와중에 쟁반은 뒤로 물려두는게 묘하게 냉정하구나, 그렇다면 아직.. 이라고 현실도피해보지만 미츠하는 벌써 코앞까지 와있었다.
눈앞에 멈춘 미츠하에 맞추어 수면이 살짝 흔들려 철썩하고 탕 밖으로 물이 흘러넘친다.
「어, 어이 미츠하」
「왜에-? 그냥 부른거면 타키군, 술 따라줘..?」
「으, 응」
어째서인지 묘한 박력에 눌려버려 술을 따른다. 그걸 맛있다는 듯이 단숨에 비워버리는 미츠하.
하지만 너무 기세좋게 마셔버린 탓일까, 입술 끝에서 흘러나온 술방울이 목을 타고 내려와 가슴으로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너무도 농염해서 무심코 눈을 돌려버린다.
「아, 타키군 왜 옆에 보는거야- 사랑하는 연인이 눈앞에 있으니까 제대로 봐줘야지!!」
「미, 미안해 미안해.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으으.. 타키군은 내가 가까이 있는게 싫은거야...??」
울어버릴듯한 얼굴을 하고 들이대는건 정말 너무 치사하다. 마치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타키는 자연스럽게 미츠하를 끌어안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계속 이렇게 하고 싶은걸 참고 있었으니까..」
「그래...써?」
「응, 그랬어」
미츠하의 눈물진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타키는 살짝 얼굴을 가까이한다. 미츠하의 입술은 평소보다도 더, 불타는듯 뜨거운 느낌이었다.
「에헤헤, 타키군 뭔가 평소보다 더 뜨겁네」
「너도, 엄청 뜨거웠어」
「타키군이 더 뜨거웠는걸~」
확인해보려는 듯이, 이번엔 미츠하가 타키의 목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들어올린다. 두 번째 입맞춤은 첫 번째보다 더 길게, 그리고 더 뜨겁게.
「역시 타키군이 더 뜨거운거같은데에..」
「아니 니가... 아, 뭐 됐다」
세 번째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길고 긴 입맞춤을 끝낸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얼굴을 맞댔다.
여행을 매듭짓는 마지막 밤은 아직 길다.
「하아... 시간 겨우 맞췄네. 마지막 날에 늦잠이라니..」
「그건 그거때문이잖아... 우우....」
도쿄로 향하는 전차 안에서 미츠하는 어젯밤 일을 떠올린다.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너무 또렷이 남아있어서 더더욱 타키 얼굴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뭐 평소답지 않은 미츠하 볼 수 있어서 좋았어」
「제발 그 얘긴 하지마.. 진짜 부끄러워... 빨리 잊어버려 타키군!」
미츠하는 예전에 집에서 취했을 때 안 일이지만, 아무래도 취하면 누구한테 달라붙는 타입인 것 같다.
친구들이랑 마실 때에는 그러지 않으니 타키군한테만 그런거 같긴 하지만.
「이야- 엄청났지, 음. 집에서 취했을 때보다 훨씬 더..」
「우우... 당분간은 술 안 마실거야...」
애초에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저 타키군이랑 마시는 술은 더 맛있을 뿐.
뭐, 그렇다면 결국 타키와 술 마시는 게 좋아서 피할 수는 없겠지만.
「뭐 그래도 온천 기분 좋았고, 또 가고싶네」
「그건... 응. 겨울에 가보고싶다-」
이번 겨울에는 무리겠지만 내년 겨울이라면 돈도 어느 정도 다시 모여 있을 터이다.
「아- 겨울이라, 괜찮겠네」
「그렇지? 눈 내리는거 보면서 노천온탕 들어가면 진짜 기분 좋을거야-」
「오, 그러면 내년 겨울을 목표로 열심히 저축해볼까!」
응! 하고 미츠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막 돌아가는 도중인데 다음 여행을 생각한다는 게 좀 웃기지만 그래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진다.
「내년도 그 다음 해도, 우리 둘이 같이 가면 좋겠다-」
「우린 분명 갈 수 있?
(디씨 에디터 문제로 여기서 잘려있어 추후 재번역 예정)
[각주]
¹ 쿠사츠 온천 : 草津溫泉. 일본에서도 가장 큰 온천 마을로 유명하다.
² 유바타케 : 湯畑. 쿠사츠 마을 거리의 중심부에서 뜨거운 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유바타케라고 부른다. 분당 5,000ℓ의 산성천(酸性泉)을 쏟아내며, 유바타케를 중심으로 19개의 다른 온천이 있다.
³ 둘만이 쓸 수 있는 노천탕 : 貸切露天風呂. 아예 대절해 전세를 내고 완전히 빌려 쓰는 노천탕
⁴ 하늘색 : 일본에서는 하늘색을 水色, 즉 물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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