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쓴 글에서, 니와타리 쿠타카의 이름 '쿠타카'는 일본어 옛말로 닭을 의미하는 단어인 '쿠타카케 くたかけ'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논문을 읽다가 쿠타카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쿠타카케'의 유래에 대해 다시 정리해본다.

 

 

JapanKnowledge 수록 『카도카와 고어 대사전 角川古語大辞典』에 따르면, '쿠타 くた'라는 단어는 고어로 腐(썩을 부)를 뜻한다고 한다.

새김은 「① 썩다, 부패하다 ② 가치가 떨어지다 ③ 비난하다, 욕하다」 등이다.

부연으로, 下(아래 하/쿠다스/くだす)와의 의미 교섭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또한, 동 사전에 따르면 '카케 かけ'라는 단어는 고어로 鷄(닭 계)를 뜻한다고 한다.

서기 800년대까지 사용된 상대 일본어에선 주로 이 '카케 かけ'가 닭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되었으며, 닭의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명칭이라 여겨진다.

 

카도카와 고어대사전 : くた(腐)

 

카도카와 고어대사전 : かけ(鶏)

 

'썩다' + '닭'이 합쳐져 '쿠타카케'라는 단어가 탄생했다는 설인데, 의역하자면 '멍청한 닭'을 뜻하며, 이는 본래 닭을 깔보며 지칭할때 쓰인 단어라고 한다.

 

귀형수에서 쿠타카가 스스로를 새대가리라 겸손하게(?) 이야기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허나 헤이안 말기에 쓰인 와카 학습서 『오의초 奥義抄』 (1144년) 이래 의미 변화가 나타난다.

'쿠타'가 집, 즉 宅의 의미라 해석되어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서의 닭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가 된 것이다.

 

카도카와 고어대사전 : くたかけ(鶏)

'쿠타카케'를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한 예시와 국역

 

「さすがにあはれとや思ひけむ、いきて寝にけり。夜ぶかくいでにければ、女、夜も明けばきつにはめなでくたかけのまだきに鳴きてせなをやりつる」 〔이세모노가타리 伊勢物語〕 (10세기 전반)

 

남편은 길을 떠나야하는 마음에 가슴깊이 슬퍼하며, 아내와 하룻밤을 보냈다. 아직 밤이 깊은데 남편이 출발해버리자, 아내는 "밤이 밝거든 물동이에 저 멍청한 닭을 처넣어야지. 아직 밤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울어서 남편을 보내버렸으니까." 라고 한탄... 

 

 

'쿠타카케'를 일반적 표현으로 사용한 예시와 국역

「Cudacaqe (クダカケ)〈訳〉 雄鶏、または雌鶏。歌語」 〔일포사서 日葡辞書〕 (1604년)

 

'Cudacaqe(쿠다카케)는 일본어로 수탉, 또는 암탉을 뜻한다. 와카에 자주 쓰이는 단어다.' 

※ 일본어-포르투갈어 사전 용례

 

 

 

이 쿠타카케의 어원에 대해, 일본에도 여러 분석이 있어 소개한다.

대부분 에도시대~메이지시대의 언어학자 '오오츠키 후미히코 大槻文彦'가 편찬한 국어사전, 「대언해 大言海」(1932년)에서 발췌하고, 일본국어대사전 또한 참조했다. 겹낫표 안은 원전이다.

 

대언해는 학교 연구실에 있어 참조했다.

1. 썩은 닭, 멍청한 닭(腐鶏 이 변한 것으로, 닭을 깔보며 지칭하던 표현이 정착했다. 

クタカケ(腐鶏・朽鶏)の義で、鶏を罵倒しての言  比古婆衣』

 

2. 백제에서 건너온 새인 데에서, 쿠다라카케(百済鶏)의 약칭이다.    ※ 쿠다라 = 백제의 일본어 발음

百済から渡来した鶏であるところから、クダラカケ(百済鶏)の略  北辺随筆』

 

3. 간토 지방의 방언으로 집을 쿠다, 닭 울음소리를 '카케'라 불렀던 데에서 따왔다. 

東国で家をクダ、鶏をカケというところからクダカケ(家鶏)の義か  擁書漫筆』

 

4. 닭을 뜻하는 범어 '쿠쿠타에시라 ククタエシラ'의 약칭이다.

鶏の意の梵語ククタエシラの略か  和訓栞』

 

5. '쿠도카케 クドカケ'의 소리가 변한 것으로, 쿠도는 위축된 곳, 카케는 소리를 내다(카케루, 掛ける)를 뜻한다.

クドカケの転。クドはくぐまったところの意、カケは声をカケル(掛)意  『本朝辞源』

 

 

 

'쿠타카케'를 '멍청한 닭'이라 쓴 용례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1번 설을 무시할 수 없으나, 나중에 붙은 아테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대체 4번 '쿠쿠타에시라'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게 얼마 전에 읽은 고구려의 국명에 대한 논문이었다.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33120

 

서길수 (2014) 「高句麗·高麗의 나라이름(國名)에 관한 연구(1) - 서녘(西方)에서 부르는 ‘계귀(鷄貴)’를 중심으로 -」 『고구려발해연구』 (고구려발해학회) 50.

 

위 논문에 따르면, 초록만으로도 바로 알 수 있으나, 산스크리트어로 '꾹꾸떼스바라'가 '신성한 닭(닭신)'을 뜻함을 알 수 있다.

 

 

120-121pp.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상권 부분 국역

 

121p.
147p.

 

논문에 따르면,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스님이 당나라와 인도로 유학을 가 공부를 하시다 입적하셨는데,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스님의 출신지를 계귀(鷄貴)라 언급하며, 계귀는 고구려이며, 고구려는 곧 구구타왜설라(矩矩吒㗨說羅)라 한다.

 

여기서 산스크리트어 '꾹꾸떼스바라(Kukkuṭeśvara) = 구구타왜설라(矩矩吒㗨說羅)'의 원음을 재고할 때

꾹꾸따(꾹꾸떼)는 '수탉'을 의미하며, 이스바라(스바라)는 '귀하게 여기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논문에선 왜설라의 의미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그 의미가 '하느님, 신, 임금 같은 가장 높은 존재'로 쓰였다고 해석하였으나, 일단 생략한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中

이 구구타왜설라는 애석하게도 닭을 숭상했던 신라와 혼동되어(경주 계림을 생각하자), 고구려의 국호였음이 잊힌채 삼국유사에서부터 신라의 국호(矩吒䃜說羅 구구타예설라)로 등장한다. 다만, 여전히 구구타왜설라가 '귀한 닭', '닭신'을 뜻함은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대언해의 4번 설로 돌아가 재구해보자.

 

4. 닭을 뜻하는 범어 '쿠쿠타에시라 ククタエシラ'의 약칭이다.

鶏の意の梵語ククタエシラの略か  和訓栞 화훈간』

 

쿠쿠타는 산스크리트어로 '꾹꾸따', 즉 수탉을 의미하는 단어가 맞다.

에시라어느 단어인지 알 수 없으나, 가까운 한반도에서 '꾹꾸떼스바라 = 구구타왜설라'를 하나의 단어(국호)로 취급해온 사실은 명백하다.  -> 해결.

 

그렇다면 대륙과 한반도에서 문물을 받아들인 옛 일본이 닭을 지칭하는 단어인 '꾹꾸따'와 닭신 '꾹꾸떼스바라'를 혼동하여, '꾹꾸뗴스바라'를 '닭'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받아들인게 아닐까?

'구구타왜설라 矩矩吒㗨說羅'를 구성하는 한자들은 전부 범어 음역자이므로, 일본에서 이를 '쿠쿠타에시라'라 읽었을 개연성은 매우 크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일본어 고어에서 닭을 의미하는 고어 '쿠타카케'는 서역・중국・한반도 문헌에서 교차검증이 가능한 '범어의 음역자'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정확히는 고구려의 서역에서의 국호로도 쓰인 '구구타왜설라'가 와전된 사례라 봐야하지 않을까?

대언해의 2번 설에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새'에서 따왔다는 의견도 있었으니, 어느정도 이치에 맞다고 생각된다.

 

또한 쿠타카케를 쿠타+카케, 즉 썩은+닭으로 보는 설은

腐의 상고음이 「쿠사 くさ」로 나타나는 점과, 비슷한 뜻을 지닌 단어인 下의 훈독이 「쿠다 くだ」인 데에서, 아무래도 단어가 건너온 뒤 붙은 아테지 냄새가 솔솔 난다.

 

 

앞으로의 과제

구구타왜설라의 '왜설라 㗨說羅'를 상대 일본어로 '에시라'로 읽을 수 있는지 언어학적 재고가 필요하다.

일단 딱 봐도 羅는 가능할거같다.

해결

 

3줄요약

1. 니와타리 쿠타카의 이름 유래가 된 '쿠타카케'의 어원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2. 그중에는 '멍청한 닭, 새대가리'를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멸칭도 포함되어있다.

3. 아무래도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온 뒤 일본으로 건너간, '꾹꾸떼스바라'라는 단어가 '쿠타카케'의 조상같다.

 


 

 

2020년 12월 23일 추가

 

『日本国語大辞典』 쿠타카케 어원설 中 범어 약칭설 부분 

 

『和訓栞』 (화훈간, 와쿤노시오리)

 

화훈간 제9권 영인본 中 쿠타카케 부분

쿠타카케가 범어로 닭을 뜻하는 '쿠쿠타에시라 ククタエシラ'의 약칭이라 설명한 일본 최초의 근대국어사전 『和訓栞 화훈간』(1777년)을 학교 도서관에서 직접 찾아보았다. 쿠쿠타에시라에 어떤 음사자가 붙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해당 내용이다.

 

'일설에 따르면, 닭을 범어로 쿠쿠타에시라(矩矩吒翳設羅 구구타예설라)라 하며 축약하여 쿠다가 되었으니, 범왜겸칭(梵倭兼称)이다.'

 

고구려의 미칭이었던 '구구타예설라'의 의미가 '범어에서 닭을 일컫는 단어'로 변하여, '쿠타카케'의 원형이 되었다는 설이 실려있다.

 

『漢訳対照梵和大辞典 한역대조범화대사전』 中 Kukkuṭa

덤으로 조사했던 『漢訳対照梵和大辞典 한역대조범화대사전』 중 Kukkuṭa 부분이다. 꾹꾸따는 수탉을 의미한다는 해설이 실려있으며, Kukkuṭeśvara는 별도로 나오지 않는다. 즉, 일본인들은 본래 산스크리트어에서 Kukkuṭa만이 '닭'을 의미함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화훈간이 따른 일설, '구구타예설라'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692년 당나라 스님 의정이 편찬한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실린 '고구려'를 일컫는 산스크리트어, '꾸꾸떼스바라 = 구구타왜설라'에서 왔다고 강하게 추측한다.

범어로 닭을 뜻하는 단어인 'Kukkuṭa 矩矩吒(구구타)'가 고대 일본으로 도래해 당음으로서 널리 받아들여졌다면, '에시라'라는 미사여구가 붙을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中

화훈간에 기록된 '에시라'의 음사자는 '예설라 翳設羅'였다.

이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천축인들이 일컫는 신라의 국호라고 일연이 잘못 해석하여 수록한 고구려의 국호 구구타예설라의 '예설라 䃜說羅'와 일치한다.

 

음역자에 대해 정리하자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선 귀하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iśvara 이스바라'를 '왜설라 㗨說羅'라고 한자로 기록하였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이를, 서길수(2014)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신라 국호로 왜곡하며 '예설라 䃜說羅'라 기록하였다.

「화훈간」의 저자가 무엇을 참고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닭을 뜻하는 범어를 '구구타예설라 矩矩吒翳設羅'라 기록하였다. 이 중 예설라는 고구려의 국호에만 붙으며 한반도 및 중국의 문헌기록에 나타나는 단어이므로, 한반도에서 유입된 단어라 추측하는 것이다.

 

㗨와 䃜와 翳는 모두 뜻을 갖지 않는 동일한 발음의 음역자이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간단 도식

꾹꾸떼스바라(Kukkuṭeśvara) : 신성한 닭, 닭신. 산스크리트어로 고구려의 국호 (대당서역구법고승전, 692년)

구구타왜설라(矩矩吒㗨說羅) : 꾹꾸떼스바라를 한문으로 적은 것. 계귀(鷄貴)라고도 적음. (출전 상동)

구구타예설라(矩吒䃜說羅) : 일연이 신라사 중심 편찬을 위해 의도적으로 신라의 국호라 기록함 (삼국유사, 1231년)

구구타예설라(矩矩吒翳設羅) : 닭을 일컫는 범어라 기록됨. '쿠타카케'의 원형으로 추측함. (화훈간, 1777년)

 

쿠타카케(くたかけ) : 닭을 일컫는 일본어 고어

쿠타카 : 귀형수 3면 보스. 닭의 신.

 

 

꾹꾸떼스바라의 의미변천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서 고구려의 국호였던 것이 삼국유사에서 신라의 국호로 기록됨. 이것이 학계에 알려진건 2014년.

韓中의 문헌에서 '신성한 닭'이었던 것이 '신성하다'는 의미가 탈락하여 '닭을 뜻하는 범어'라고 화훈간에 기록됨.

 

 

 

최종적으로 남은 과제는, 화훈간의 저자였던 에도시대의 국학자 타니카와 코토스가(谷川士清, 1709―1776)가 일본에 있던 어떤 문헌을 참고하여 '범어 약칭 일설'을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만약 실전되지 않은 문헌이라면, 인도에서 중국, 신라를 거쳐 최종적으로 일본에 이르기까지 '쿠타카케'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실증하는 중요한 언어학・역사학적 단서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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