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적으로 시장의 신 '이치가미 市神'에 집중하여 쓴 고찰글로, 동방의 '텐큐 치마타'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습니다.
텐큐 치마타가 이런 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구나, 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요시무라 타이지 "「이치가미를 추구하며」 경제학적 포크로어 연구의 시작",『테즈카야마 경제 경영 논집』, 2019, pp. 41-62 를 발췌 번역하고 각종 문헌을 통해 살을 붙였습니다.
인간에게, 물건을 포기하는 일은 어렵다.
누구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받은 물건이라는 정보는 계속 남는다.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더라도, 산에 불법 투기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버렸다는 정보는 남아있다.
소유권을 잃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완전히 그것이 가능한 장소가 있다.
인간이 유일하게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 그것이 시장이다.
시장에서 무언가를 파는 행위로, 완전히 소유권을 잃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녀는 그것을 관장하는 신인 것이다.
- 홍룡동 오마케 텍스트
이치가미 市神
이치가미는 시장의 신이다.
시장은 교역을 행하는 장소이며,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다.
이 시장에서의 온갖 행위와 시장의 안전을 수호하는 자로서 숭상받던 신이 바로 이치가미다.
하지만, 현대의 이치가미는 전통시장의 쇠퇴와 동시에 퇴행하거나 소멸했다고 여겨진다.
2004년을 기준으로, 이치가미를 주신으로 모시며 사람이 상주하는 신사는 단 5곳만이 남아있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이치가미 신사는 이미 사라졌으며, 작은 비석이나 사당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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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의 어원과 고대 시장의 특성
고대 일본에서 시장은 이치(市), 또는 이치니와(市庭)라 불렀다.
그 어원이 신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의 단어인 이츠키(斎, 고대에는 '이치키'라 읽었다.)라는 학설이 있는데, 斎에서 갈라져나온 단어로 이츠키메(斎女, 신에게 봉사하는 소녀), 이타코(イタコ, 도호쿠 지방의 무녀) 등이 있으나 모두 성스러움이나 신비성을 뜻하는 단어이다.
즉, 시장이란 본래 거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신들이 사는 세상으로 향하는 출입구이자 이세계에서 속세에 방문하는 신들을 접대하는 성역이었던 것이다.
한편, 시장(市 이치)은 길(道 미치)이나 거리(衢 치마타), 마을(町, 마치) 따위의 단어와 '치'라는 발음을 공유해
이것들과 관련된 공통 요소, 즉 '경계'와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있다.
시장은 길가나 나루, 도시와 시골의 경계, 국경, 사거리나 고개, 절과 신사의 입구 등 교통의 요충지에 세워지곤 한다.
마르크스는 '상품 교환은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정의했으며 이것은 시장이 세워지는 장소가 전부 몇몇 집단의 '경계'라는 뜻이다.
신성함과 경계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장의 예로, 절과 신사의 입구에 세워지는 시장을 들 수 있다.
또한, 무지개 아래에 세워지는 시장도 좋은 예이다.
중세 귀족들 사이에선 '무지개 아래에는 시장을 세워야만 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어, 그러한 전통이 전국시대까지 이어졌다.
먼 옛날로부터 무지개는 하늘을 건너는 다리로 생각되어, 그 다리를 건너 신들이 찾아온다고 여겨져, 신들을 맞이하는 행사로써 시장을 세우고 물건을 사고 팔았던 것이다.
시장은 성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천계와 속계의 경계인 무지개 아래에 세워져야만 했으며, 경계이기도 한 무지개 아래가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역으로 기능한 것이다.
○ 이치가미의 대상
이치가미가 깃드는 대상(신체 神體)로서는 돌이나 나무 등이 있다,
이치가미로서 모셔지는 신은 에비스, 오오쿠니누시(大国主), 오오이치히메(大市比売), 이치키시마히메(市杵島姫), 코토누시히로(事代主), 스미요시 묘진 등이 있다.
이치가미로서 누구를 모시는가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른 차이가 크다.
도호쿠에서는 신을 특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간토와 주부에서는 각종 제신이 혼재하며, 칸사이에서는 에비스를 중심으로 오오이치히메를 모시는 곳도 있고, 칸사이 이서 서일본에서는 에비스만을 모신다.
○ 이치가미의 기능
카츠마타 시즈오의 논고 「매매・납입과 소유관념」에 따르면,
고대의 시장은 물건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장소일뿐만 아니라, 거기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교환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고대 일본에서 특정 날짜에 젊은 남녀가 모여 서로 구애의 노래를 부르던 풍습을 우타가키(歌垣)라 하는데, 시장에서는 우타가키가 곧잘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미혼 남녀 뿐만 아니라 결혼한 남녀의 교환마저 허락되어서 '이미 연을 맺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교환을 하여도, 신에게 '벌 받지 않는' 장소였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남녀의 '교환'을 거시적으로 다루자면,
사람들은 시장을 물건을 교환하는 장소로만 여기지 않고, 시장에 온 사람 자체가 교환 가능한 인간이 된다는 인식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즉, 고대의 시장은, 시장에 온 사람들의 시장 밖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리는 특수한 공간으로서 기능하였으며,
'그 사람의 위치나 상태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야 교환이 이루어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가 시장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기존의 인간 관계나 억압 따위에서 해방되어 서로에게 구애의 노래를 부르며 우타가키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 밖에서의 관계를 절단하는 장소로서의 시장은, 물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시장이 관계성을 끊어버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환을 목적으로 하여 물건을 가져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일본영이기 日本霊異記』에는 시장에서의 장물 교환 이야기가 여럿 수록되어 있으나, 도둑이 장물을 시장에서 파는 행위는 지극히 일반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즉, 시장은 장물조차도 사고 팔 수 있는 장소이며, 장물이 그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근저에 있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은 시장에 신이 나타나, 거룩한 힘으로 시장의 온갖 물건의 성격이나 관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녔었다. 요컨대, '시장에 들어온 물건은 신의 세계에 들어온 신물神物이 된다'는 관념이다.
누군가가 훔친 장물일지라도, 시장에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신의 물건이 되어, 본디 소유자와 일시적으로 분리된 상태가 되고,
'무주無主의 물건', 누구의 것도 아닌 물건으로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관장하던 신이 바로 '이치가미'이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이치가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이 지닌 물건에 대한 소유・지배의 관계, 그리고 물건의 생산 관계를 끊어버리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치가미의 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범죄자가 소유했던 말・노비・벼 따위를 시장에 내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그러한 재물이 범죄자의 혼을 담은 부정한 물건이라 생각되어, 시장에 내놓는 것으로 부정을 정화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본디 일본에서는 어느 사람이 소유한 물건, 특히 오랫동안 지닌 물건에는 소유자의 혼이 깃든다는 관념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술적 소유 관념은, 모르는 사람과의 물물 교환을 위험한 행위로 기피하게 만드나
시장은 소유자와 그의 혼이 담긴 물건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정화의 장소로서도 존재했다고 여겨진다.
『일본서기 日本書紀』에 기록된 일화로, 백제의 승려 일라(日羅)가 일본에 건너와 덴노에게 투구를 헌상했을 때,
덴노가 아토노쿠와노이치(阿斗桑市)라는 시장에 투구를 잠시 두게 한 뒤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이국에서 온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물건에 담겨있던 혼을 시장에서 떨어트리는 작업을 행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비슷한 개념은 608년 수나라의 사신 배세청(裴世清) 일행을 일본 조정이 고대 일본 최초의 시장 츠바이치(海石榴市)에서 맞이하였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외국 사신단이 수도에 들어올 때 함께 섞여 들어올 사악한 영혼을 사전에 시장에서 제거한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뜻으로,
이 이야기 또한 시장이 이국 사람의 혼을 정화하는 공간으로 작용해, 외국인의 본국에서의 인적 관계를 시장에서 절단한다는 목적이 내포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사례에서 보이듯이, 시장에서의 매매는 본질적으로 매매 대상의 물건을 일단 신에게 공물로서 바치고, 신에게서 그 교환물을 각자에게 나눠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즉, 신과의 교환・매매가 이루어진 것이다.
요컨대, 시장에서의 거래는 이치가미를 중개자로 하여 장사꾼과 손님의 삼자 간에 이루어지는 삼각 교역이었다.
정리하자만, 이치가미에게는 사람이나 물건이 갖고 있던 관계성을 절단하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은 사람과 물건에게 새로운 관계성을 맺어주는 장소이기도 하여, 이치가미는 그러한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고 추측 가능하다.
그 실마리는 시장의 시작, 즉 시장이 세워지는 과정에 숨겨져있다.
○ 이치마츠리와 양면적 존재로서의 이치가미
사쿠라이 에이지의 논고 『일본 중세의 경제구조』에 따르면,
시장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로 이치마츠리(市祭, 시제)가 있었다고 한다.
즉, 상호간 인격적인 지배관계를 갖지 않고 거주지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시장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신용을 구축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했던 합의 형성 절차로서 축제가 열렸다는 것이다.
축제는 사람들에게 흥분을 공유시키고, 신과 계약을 행함으로서 공통된 합의에 이르게 했다.
중세 일본에서 시제에 참가하지 않은 상인은 그 지역에서 장사를 할 수 없었다는 관습법이 존재했던 것도, 시제가 중요한 합의 형성의 장소였던 증거로서 여겨진다.
이상으로, 이치가미에게는 시장에 오는 사람이나 물건에게 있어서 주술적 관계 단절의 기능과,
상업에 있어서 필요한 축제의 대상으로서, 실용적 결합의 기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건이 매매되기 위해서는, 물건의 기존 소유・지배관계나 생산관계가 절단되어, 새로운 소유・지배관계가 맺어져야만 한다.
판매자로부터 구매자에게의 물건의 소유(권리)의 이전이 동반되는 것이며, 기존의 관계를 끊음과 동시에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
이치가미는 단절과 결합의 기능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 존재이며, 더 나아가자면 추상적 존재임과 동시에 실용적 존재였던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매매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실용적인 단절과 결합의 기능을 이치가미라는 추상적 존재로 정당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다.
○ 이치가미의 쇠퇴와 소멸
지역적인 차이가 있어 함부로 다루기는 어려우나, 이치가미와 시장은 근대적인 경제 사회가 발달하며 쇠퇴하였다.
예컨대, 1972년 발간된 『일본민속사전 日本民俗事典』에도 '이치가미의 신앙의 소멸은 급속히 이루어졌다'고 기재되어 있으며
1951년 키타미 토시오는 이치가미에 대해 저술하며
'지금은 공터나 신사, 공원의 한구석으로 밀려나, 심지어는 그 비석을 젊은이들이 힘겨루기를 하며 함부로 들어올릴 정도로 몰락해 버렸다'고 한탄하고 있다.
여러 논문에 따르면, 근대에 접어들며 단절・결합을 관장하며 거래를 중개하는 시장의 수호신으로서의 이치가미는 사라지고,
현대에 보이는 것과 같이 시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상업 번창을 가져다주는 상업의 신으로서 성격이 전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본디 상업의 신으로서 널리 숭상받고 있던 에비스 등의 신들이 이치가미를 밀어내고 시장의 신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치가미를 시장에서 몰아낸 요인은 무엇인가.
본래, 시장은 무주물의 성역이며 외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장소였다.
굳이 따지자면 신이 지배하는 장소이며, 신의 의사를 받아 상인들이 관할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시장이 주인 없는 장소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곳이 성역이라는 관념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관념을 권력자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권력자가 나타나면 그 개념은 처참히 무너지는 것이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시장 정책을 펼치게 되자, 시장의 지배자는 이치가미에서 사람(권력자)로 바뀌고, 이치가미는 그 지위에서 쫓겨나게 된다.
종래의 시장은 사람들이 오가는 경계에 세워졌으나, 그러한 관행은 부정되고, 영주의 의사에 따라 이곳저곳에 시장이 세워지게 된다.
즉, 시장은 영주에 의해 '사유화'되어, 상인들은 이치가미가 지배하는 시장이 아닌, 영주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게 되었다.
권력자에 의해 시장의 수호신의 자리에서 내쫓긴 이치가미는, 시장의 본래 관념과 무관계한 상업 번성의 신으로서 다시 규정되었다.
이렇게 실질적인 시장의 수호신으로서의 이치가미는 소멸하였고, 이윽고 근대적인 시장이 등장하자 쇠퇴 일로를 걷게 된 것이다.
○ 현대의 이치가미, 화폐
그 후 이치가미의 단절・결합 속성을 완벽히 대신한 존재는 다름아닌 화폐였다.
상인은 화폐를 받고 생산물을 손님에게 건넨다. 화폐는 기존의 소유 관계를 단절시키고, 새로운 소유 관계를 완성하는 교환 수단으로 기능한다.
현대적인 표현을 하자면, 물물 교환에서 화폐 경제로의 이행이자, 화폐는 소유권의 이전을 매개하는 수단인 것이다.
시장을 평화롭게 수호하고 매매를 원활하게 하는 존재, 사람과 물건의 관계성을 끊고 재결합시키는 존재로서의 이치가미는, 화폐에 깃들어 현대를 살아간다.
대지에 우뚝 선 신사에서 떨어져나가, 자연(토지)가 아닌 인공물(화폐)에 깃든 이치가미.
이치가미가 화폐와 통합되어 시장에 상주하는 존재가 아니게 된 시점에, 시장이 쇠퇴의 길을 걷게된 것은 숙명이었다고 여겨진다.
지금은 비트코인과 같은 전자화폐도 발달하여, 이치가미는 더욱 관념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러한 관념적인 존재로 있으면서도, 지금도 단절과 결합이라는 인과력을 경제 세계에 끼치고 있다.
○ 사에노카미(경계의 신)로서의 이치가미
사에노카미(사이노카미라고도)란, 마을의 경계 등에서 악령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셔지는 신이다.
도조신과 거의 동일한 존재이며, 이치가미처럼 자연석에 깃든다고 여겨진다.
사사모토 세이지의 저술『중세 세계에서 근세 세계로』에 따르면,
시장이 자주 열리는 사거리는 저승과 이승의 경계이며, 이치가미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특수한 장소를 관리하고, 그 범위를 결정하는 효력을 지녔다고 한다. 즉, 이치가미는 경계를 관장하는 사에노카미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전술한 수나라 사신 배세청 일행이 교토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악한 영혼을 제거하기 위해 교토 네 귀퉁이에 모셔진 사에노카미에게 제사를 올린 뒤에 경계를 개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네 귀퉁이 중 하나가 아스카시대에는 츠바이치(海石梅市, 일본 최초의 시장)였다고 한다.
이렇듯이, 적어도 사에노카미는 이치가미의 한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계를 막고 수호하는 사에노카미인 이치가미는 대체 무엇을 막고 있었다는 것인가.
당시 사람들이 악령이라 여기며 내쫓으려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현대의 경제 구조란
'화폐라는 미디어를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즉, 화폐 지불과 수령으로 전체 사회에 분화한 부분 시스템'이라 하였다.
고대나 중세, 근세의 시장에서는 화폐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언제나 존재하였다.
미숙한 화폐와 미숙한 경제구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필요하였고, 시장 또한 세워져야만 했다.
사에노카미로서의 이치가미는, 시장에서의 외부 불확실성을 틀어막고, 미숙한 경제 구조를 수호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무언가를 교환하고자 하는 목적 이외에 시장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을 막고 있던 것이다
매매(교환) 이외의 이유로 시장에 다가서는 사람은,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삿된 이유를 지닌 존재, 악령으로 보였을 것이다.
시장을 이치가미가 관장하는 성역으로 여기는 것으로, '교환과 교환' 이외의 이유를 몰래 숨긴 사람들이 시장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시장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그와 동시에 성역화 및 단절과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교환'을 원하는 사람들을 더더욱 불러모으는 효과도 지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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