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성지순례 지도
확대도

스와대사 혼미야를 나서, 스와의 현인신이 살았던 옛 저택으로 향한다.

멀리 야츠가타케 연봉이 보인다. 요괴의 산의 모티브가 되었던 바로 그 산맥이다.

 

 

 

오호리 옛 저택 (旧大祝邸)
스와시

 

 

신사를 나와 자전거로 10여분 달리다보면, 여느 가정집과 다를 것 없어보이는 이런 저택이 나온다.

 

 

웬일로 한글 안내가 있었다. 스와 여행에서 유일하게 봤던 한글...

안내문에 쓰여있듯이, 이곳은 스와의 현인신 오오호리(大祝)가 살던 저택이다.

 

 

환상향의 현인신, 코치야 사나에

동덕이라면 아마 현인신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을테다.

현인신(現人神)이란, 사람인 동시에 신으로 여겨져 추앙받는 존재를 뜻한다.

 

현대의 현인신, 달라이 라마

현인신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다.

역사적으로는 2차대전 패전에 따라 인간선언을 하게 된 일본의 천황가가 유명하고, 접신한 무당도 그 순간에는 현인신으로 분류될 수 있다.

티베트불교의 달라이 라마, 네팔의 소녀신 쿠마리는 현재까지도 신앙받고 있는 현인신이다.

 

일본 신토에서도 각지에 현인신이 존재하여 믿음을 모았고, 그 중엔 스와대사의 스와씨(諏訪氏) 가문이 있었다.

 

 

스와씨의 문장

스와씨는 스와대사의 제신인 타케미나카타(스와묘진)의 후손을 칭하며, 스와 지방을 근거로 활동한 호족이다.

고대로부터, 스와씨는 칼을 다루는 무사이자 신을 모시는 신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특이한 씨족이었다.

대대로 현인신을 배출한 스와씨는, 군신 타케미나카타를 신앙한 많은 무장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절대적인 신비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스와를 다스리며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제정일치 가문이었던 것이다.

 

전국시대까지는 그렇게 제정일치를 하며 이어왔으나

에도시대에 들어와서는 '영주 스와가'와 '현인신 스와가'가 나뉘어 제정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정부의 명령으로 천황을 제외한 모든 현인신이 부정되고, '현인신 스와가'는 귀족 칭호를 받으며 현인신을 포기한다.

 

마당까진 들어와서 둘러볼 수 있다.

이 저택은 에도시대까지 현인신 스와씨가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근현대에 크게 보수되었으나, 에도시대의 모습도 조금은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주택 자체는 보수로 에어콘도 달려 있는 등 현대식이다. 현재는 스와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스와 가문의 유물들을 전시해 현인신이 살던 당시를 재현한다면 충분히 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을텐데..

 

 

현인신의 집은 신전(神殿, 고우도노라 읽음)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귀족 직위를 받은 현인신 스와씨 가문의 마지막 사람이 죽어 단절된건 2002년, 생각보다 최근이다.

21세기까지 살아온 현인신.. 세상이 바뀌는걸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시야마 작가님의 만화에 등장한 현인신 옛 저택

 

코치야 사나에는 스와묘진의 피를 이어받은 현인신이므로, 말할 것도 없이 풍신록의 중요 성지 중 하나.

진짜 사나에는 설정 파헤칠 때마다 재미있는 캐릭터인거같다. 알쏭달쏭하면서 재미짐

 

 


신장관 모리야 사료관 (神長官守矢資料館)
치노시

 

 

신장관 모리야 사료관은 오호리 저택으로부터 자전거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문패에 신장관 모리야라 적혀있는게 인상적이다.

모리야 가문은 스와 가문과 달리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

 

 

 

그림판으로 정리해본 스와신앙과 풍신록

 

스와 대전에서 타케미나카타가 승리하고 모리야신은 패배했지만, 모리야신은 배제되지 않고 타케미나카타와 함께 숭배받았다.

 

하지만 역시 격의 차이는 존재해

타케미나카타의 자손인 스와씨는 현인신이 되었고, 모리야신의 자손인 모리야씨는 제사를 주관하는 신장관 가문이 되었다.

 

 

모리야가 78대 당주 모리야 사나에씨

 

그 모리야의 가계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 현재 78대 신장관 모리야 사나에(守矢早苗)씨가 건재하다.

코치야 사나에의 이름은 모리야 사나에 씨로부터 따왔다는게 정설이다.

 

 

기도전 모습. 안내문 중간에 일자상전에 대한 서술이 있다.

 

모리야 가문에선 신장관의 자식 중 단 한 명에게 가문에 전해오는 비술이나 예법을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일자상전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미샤구지 신에게 올리는 제사법, 현인신 즉위의 비술, 스와묘진의 제약법 등 매우 중하고 기이한 것들이었다고 하는데


유신 이후인 메이지 5년, 신장관과 현인신 등 비과학적인 전통을 부정하는 여론이 일어나 그러한 제도들이 폐지되고 탄압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사가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76대 신장관 모리야 사네히사(守矢実久)는 그 중 일부만을 자식 77대 모리야 미사치(守矢真幸)에게 전해줬으나

안타깝게도 모리야 사나에에게는 그 어떤 내용도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술「일자상전의 탄막」

 

 

동방 세계관에서는 사나에가 일자상전의 비술을 기억하고 있어 탄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민속학적으로나 종교학적으로나 정말 중요한 전승이었을텐데... 근대화를 거치며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 풍습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사료관 모습

 

모리야 사나에씨는 스와연구회를 건립해 스와신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이 사료관 또한 사나에씨의 의뢰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료관에는 1000년 전부터 모리야 가문이 소장해온 각종 고문서를 전시중이며, 나가노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도 정말 많다.

전국시대 오타쿠라면 타케다 신겐이 모리야 가문이랑 주고받은 편지 보고 끔뻑 죽는다 ㄹㅇ

 

내부 모습

 

관람료도 100엔밖에 안하는데 스탭분께서 자세한 설명도 해주셔서 정말 가볼만하다.

안에는 모리야가문이 집전한 어두제가 재현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어두제

 

 

 

조우노세 작가님의 만화에 등장한 어두제

 

어두제(御頭祭, 온토사이)란 75마리의 사슴과 토끼를 잡아 목을 자르고 바치는 스와대사만의 특수 의식이다.

한때 전승이 끊겼으나, 연구를 통해 복원에 성공해 지금도 사슴 박제와 살아있는 닭으로 대신해 행해지고 있다.

의식의 목적은 많은 짐승을 잡아 스와묘진에 바침으로써, 군신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라 해석된다고 한다.

 

실제 토끼 박제랑 사슴 날고기가 전시되어있어서 비위 약한 사람들은 보기 힘들지도

 

 

 

어두 미샤구지 총사 (御頭御社宮司社)

 

 

사료관 부지 내에는 전국의 미샤구지 신앙을 아우르는 총본산 사당이 있다.

모리야신을 모시는 모리야 가문의 땅이니, 당연히 모리야신이 부리는 미샤구지의 사당도 있는게 아닐까.

 

미샤구지(ミシャグジ)는 일본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넓게 발견되는 민간신앙에서 모셔지는 신으로

그 정체도 돌의 신, 나무의 신, 재앙신, 술의 신, 경계신, 도조신 등등등 정말 많은 민속학적 해석이 있다.

스와지방에서는 보통 모리야 가문이 모시는 신으로 여겨지며, 스와묘진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다.

 

 

모리야 가문은 스와대사에서 이루어진 각종 의식에서 미샤구지를 강림시키는 역할을 맡아왔다.

모리야신의 후손이라 칭해지는 모리야 가문이 미샤구지를 '강림'시킬 수 있으므로, 미샤구지는 모리야신의 권속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직접 가보면 정말 신비로운 분위기임.

미샤구지는 자연물에 빙의한다고 여겨지기 떄문에 주변에 있는 나무들도 죄다 신목이다.

 

수부「미샤구지 님」

 

스와코의 마지막 스펠 수부「미샤구지 님」은 미샤구지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모리야신을 뜻한다.

 

 

 

사라진 현인신이 살던 신전, 모리야의 신장관이 지금도 살아 숨쉬는 공간

사나에와 스와코의 원류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성지

 

 

 

주소

 

현인신 오오호리 옛 저택

長野県諏訪市中洲1606

나가노 스와시 나카스1606

 

신장관 모리야 사료관

長野県茅野市宮川389-1

나가노현 치노시 미야가와 389-1

 

 

가는 방법

JR 츄오본선 치노역 하차, 도보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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