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시모스와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마츠모토행 츄오본선에 올라탄다.
행선지는 카미시로(神城), 신주 ZUN의 고향인 하쿠바촌(白馬村)의 한 마을이다.
스와에서 장장 100km를 가야 하는 시골이고, 기차는 2~3시간에 한 대 꼴로밖에 다니질 않는다. 깡촌중의 깡촌
운임은 1490엔, 거리에 비해서 싸다고 느껴진다.
나가노 제2의 도시 마츠모토에서 시나노오오마치행 오오이토선으로 갈아탄다.
마츠모토부터 카미시로까진 차창 밖으로 끝없는 산맥이이어진다. 일본에선 이 산맥을 일본 알프스라 부르는데, 직접 보면 과장은 아님
타고 가다보면 신주가 이런 데서 자랐으니 환상향을 묘사해낼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듦
기차 밖 풍경이 이리 아름다운 노선은 얼마 없을게다
시나노오오마치에선 또 열차를 완행으로 갈아타야하는데, 이 2량짜리 열차는 비용 감축을 위해 승무원이 차장 한 명만 타는 원맨 열차다.
그러니 내릴 때엔 맨 앞 문으로 이동해 차장이 보는 앞에서 돈을 계산해 내야한다
난생 처음 타본거라 신기했는데 생각보다 일본 이곳저곳에 많더라
3시간의 승차를 마치고 카미시로에서 기차를 내리니 설국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눈이 쌓여있어서 당황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니 어느정도 제설되어있을줄 알았는데..
우리들 정직촌(正直村)의 주민은 원래부터 여덟 명뿐이었다.
전원이 동쪽의 산으로 이사하게 되어 2년이 지나려던 참이었다. 솔직히 지루한 나날이었다.
어느 날, 한 명이 복숭아 나무 옆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그래, 그리고 우리들은 이 낙원에서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즉시, 인간임을 그만두었다...
홍마향과 함께 발매된 동프 첫 음악앨범 봉래인형에서
ZUN은 자기 자신을 '정직촌의 사생아, 가장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라고 표현하며 환상향에 들어섰음을 표현했다.
이 문구가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띄고 있는 지는 필자인 신주만이 알겠지만, 동방 팬들의 공상을 자극하는 말이긴 하다.
정직촌이란 아마 ZUN이 소속되어있던(또는 창작한) 어떠한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을테며
정직촌 사람들은 통째로 환상향으로 들어가 환상향 주민이 되었으므로, 이 '정직촌'의 원풍경을 찾아야 환상향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동방 세계관, 특히 풍신록의 설화는 '풍신록 이전까지는 대중에 주목받지도 않았던'(외래위편 4권 인터뷰 中) 나가노 스와지방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미루어 보아 ZUN의 고향인 하쿠바 또한 ZUN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에
하쿠바에서 환상향을 찾고자하는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하쿠바는 20년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곳이다. 평창이랑 비슷한 분위기임. 눈만 많고 사람은 없다
주변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나서 성지로 향한다. 길가에 눈이 3m씩 쌓여있다.
눈의 도시;
히메카와 (姫川)
하쿠바촌, 오타리촌, 이토이가와시
히메카와는 하쿠바촌에서 발원해 니이가타의 이토이가와를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사진은 하쿠바촌을 돌아다니며 여러 곳에서 찍은거임
히메는 공주님이라는 뜻으로, 히메카와의 '히메'는 고사기에 등장하는 여신 누나카와히메(奴奈川姫)로부터 유래한다.
누나카와히메는 니이가타 이토이가와 지역에 살던 지방호족의 딸이었다.
어느날, 오오쿠니누시(大国主)가 집앞에 찾아와 구혼의 노래를 부르자, 누나카와히메도 시를 지어 화답했다.
다음날 밤, 두 신은 결혼하여 맺어졌다.
오오쿠니누시는 동덕들에겐 이나바의 흰토끼 설화로 유명한 쿠니츠카미다.
누나카와히메와 오오쿠니누시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곧 타케미나카타, 후의 스와묘진이자 야사카 카나코이다.
스와 신화에 따르면 타케미나카타가 스와 땅에 들어갈 때에 히메카와를 거슬러올라갔다고 하며
스와 대사의 여러 제사도 이 강 유역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히메카와는 예쁜 이름과 달리 수해가 잦았는데
1911년엔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해져강 히에다산(稗田山)이라는 1500m급 산이 무너지는 일본사 최악의 산사태가 일어났다.
산사태로 1만5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토사가 유출되어 히메카와 지류 강줄기를 막아 호수가 하나 새로 생겼고 마을 하나가 통째로 파묻혔다고 한다.
당시 유출된 토사로, 붕괴 지점으로부터 6km 떨어진 지역에도 100m가 넘는 흙이 쌓였다니.. 상상하기가 힘들다.
동방자가선 4화에서 일어난 산사태가 히에다산 산사태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추측이 있다.
비교적 최근인 1995년 7월 11일에도 히메카와가 대범람해 국도가 끊어지고 16명이 목숨을 잃는 등 히메카와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많아
히메카와는 에도시대 때부터 꺼림받는 강, 기피받는 강이라는 뜻인 이토이가와(厭い川)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꺼림받는 강이라는 이명과 달리, 이토이가와 유역은 예로부터 최고급 비취 산출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강가를 걷다보면 비취 원석을 심심찮게 주울 수 있어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고.. ㄷㄷ
스와의 어머니강이자 비취로 흥했던 히메카와의 전설은
스와코의 4번 스펠 원부「이토이가와의 비취」나 더블스포일러 스펠 희천「프린세스 제이드그린」의 모티브가 되었다.
히메카와를 뒤로하고 다음 성지로 향한다. 히메카와는 하쿠바 전역에 흐르기 때문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눈은 많고 사람은 없고 산은 멋지고.. 경치 구경하며 슬슬 걸으니까 되게 상쾌했다.
하쿠바의 성지들은 대중교통 이용이 사실상 불가하다. 렌터카를 빌리거나, 마음 굳게 먹고 발품을 팔자.
죠미네 신사 (城嶺神社)
하쿠바촌 카미시로
카미시로에서 히메카와를 건너 약 30분간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신사이다.
언덕을 좀 올라가야하는데 완전히 눈밭임 ㅋㅋㅋ
눈 온 뒤 내가 첫 참배였는데 무릎까지 그냥 푹푹 빠졌다
죠미네의 일본어 표기는 城嶺인데, 城는 같은 발음인 白으로 변환하면 하쿠로 읽을 수 있고
嶺는 레이로 읽을 수 있다.
신주 고향마을에 위치한 신사고, 보통 평지에 자리잡는 마을 신사와 다르게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으며
조금만 이름을 비틀면 '하쿠레이 신사 (博麗神社)' 라 읽을 수 있는 점에서 하쿠레이 신사와 레이무의 원소재로 여겨지는중
신주 ZUN이 제기된 의견에 대해 크게 부정하지 않아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환상향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신사에 하쿠레이 대결계가 쳐져있어
결계 너머의 하쿠레이 신사를 오갈 수 있을텐데..
유카리 직무유기해서 동면중이라 난 안잡아감 ㅠㅠ
이 죠미네 신사는 2014년 11월 하쿠바를 진원으로 한 매그니튜드 6.7짜리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지금 세워져있는 신사는 2016년 모금을 통해 일시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하쿠바의 재건에는 동방 팬들도 기부에 많이 참여해 반쯤 공식 성지로 자리잡은 모양
동방비상천의 재현..?
그러고보니 이 신사가 위치한 마을 이름인 카미시로 또한 신들의 성채란 뜻이다.
성채야 산맥을 일컫는 말이겠지만, 신들과 요괴가 어우러져 사는 환상향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눈내린 신사 법당 턱에 앉아 내 발자국을 보며 한 20분동안 쉬었다.
세상과 단절된 울창한 숲 속 신사, 환상향에 들어온 것만같은 기분이 든다.
신사를 나오며 찍은 사진, 토리이와 사당과 숲이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하쿠레이 신사도 분명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주소
長野県白馬村神城17566
나가노현 하쿠바촌 카미시로 17566
가는 방법
JR 오오이토선 카미시로역 하차, 도보 30분
상・하행 모두 하루에 10편만 정차한다. 시각표를 잘 확인하자
'동방 성지순례 > 나가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즈이 신사 (葛井神社) (0) | 2020.06.14 |
---|---|
하쿠바 ② (白馬) (5) | 2020.04.19 |
미사야마 신사(御射山神社) (1) | 2020.04.19 |
스와대사 카미샤 마에미야 (諏訪大社上社前宮) (0) | 2020.04.03 |
현인신 옛 저택 & 모리야 사료관 (大祝旧邸・守矢史料館) (1) | 2020.04.02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