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연말에 거의 막무가내로 다녀왔던 호남 여행 사진들

찍은 사진이 많진 않지만 백업용으로 올려본다.

 

노량진에서 장승배기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있는 값싼 횟집

전역을 하고 얼마 뒤였다. 

연말인데 한 번 마시자는 구실로 군대를 전역한 고등학교 친구놈들과 아직 가지도 않은 놈들끼리 뭉쳤다.

대부분 군대에 있어 예전만큼 많이 모이진 못했지만, 6명이서 단란히 술먹고 오버워치나 하러 가면 족했다.

 

이제는 다들 자취를 살거나 이사를 해서, 모이는 장소는 언제나 정해놓고 서울 정가운데인 노량진이었다.

노량진에서 재수를 한 놈들도 더러 있고, 500원에 1시간짜리 피씨방이나 저렴한 맛집들이 많아 집결지로 알맞았다.

 

수능이 끝난 뒤, 새벽에 술마실 곳이 없어서 학교옆 천변 둔치에 편의점 술을 깔아놓고 마시기 일쑤였다.

남고의 세 개뿐이었던 문과반 친구들은, 여하튼 술을 좋아했다.

학교 선생님들 중에선 주말농장에 학생들을 불러 김매기나 모내기를 시키고는 밤에 술 마시고 같이 자고, 그런 자유로운 분들도 계셨다.  어느 정도의 일탈은 눈 감아주는 분위기였다.

 

문과라 그랬는지, 유달리 우리 반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면도 있어서, 주된 안주거리가 정치나 역사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대부분 인문대나 사회과학대에 진학해 생활을 하며 머리가 커지고 생각도 많아졌으니, 연말 남정네들끼리 여행으로 광주에 가자는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군생활을 했던 화천

마침 나는 이제는 친구가 된, 퍽 친했던 소대 맞선임이 군산에 살고 있어서 전역하면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번개 연말여행 계획을 딱 짜놓고, 너희들보다 하루 먼저 군산에 내려가 군대 친구를 만난 뒤 광주에서 합류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언제나 설레는 용산역이다.

기차역이나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떠오르는 몽글거림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호남선 KTX 타는 곳

호남선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렸다. 익산에서 장항선으로 갈아타면 군산은 금방이다.

군산역에 내려 찍은 사진

친구는 역앞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복을 입고 만나니 확실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 가볍게 구경을 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군산은 역시 적산가옥이 많은게 시내의 주요 볼거리다.

예전에도 두 차례 온 적이 있었는데, 좋게 말하건 나쁘게 말하건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친구랑 있다보니 드러내놓고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그동안 뭐했는지, 잘 지냈는지 등등 잡담하고 술이나 마시러 온 거였으니까.. 그래서 찍은 사진도 많진 않다.

 

동국사 마당

그래도 역시 동국사에는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다. 한국에 남은 몇 없는 일본식 사찰.

 

정원이나 건축양식이나 일본의 그것을 빼다박아서 특이하다.

이 사진만 떼어서 일본 친구한테 보여준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라 하니까 퍽 놀라는 눈치였다. 

 

마당 한 켠에는 소녀상도 서 있었다.

일본 조동종에서 세운 참회문 비석도 곁에 세워져 있던데, 한일관계가 이렇게 화합과 협력의 길을 걸어나갔으면 한다..

 

동국사 근처 어디서 찍은 고양이 사진.

군산은 동국사까지만 대강 둘러보고, 관광하러 온 건 아니니까 카페나 가자고 해서 진득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 집은 은파유원지 근처에 있었는데, 주변 설빙에서 빙수나 먹으며 시간을 죽이다 유원지나 돌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으론 참치회를 먹었다. 맛있었다..

군대에서 당시 선임이었던 친구한테 "전역하면 군산까지 찾아갈겁니다" 라고 했는데, "네가 오면 내가 참치회를 사준다"고 했었다.

 

반신반의했겠지만..ㅋㅋㅋ 물론 술값이나 카페값 등등은 내가 내서 사실상 더치페이였다.

 

이날은 과음을 좀 해서 친구 집에 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샤워도 거른 채 친구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군산역 대합실

다음날, 새벽부터 서울 친구들이 차를 끌고 광주로 내려오고 있었으니 아침일찍 일어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친구 아주머님께서 차로 군산역까지 바래다주셔서 기차 시간도 넉넉했다.

역앞 광장에서 군대 친구랑 인사를 나누고 군산을 뒤로 했다.

 

친구랑은 요즘도 간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자격증 따기에 열심이란다.

 

플랫폼

아침의 군산역은 승객이 적어 조용했다. 

기차랑 철도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좀 더 파봤으면 어땠을까...

익산역

다시 익산역에서 호남선(광주선)으로 갈아타 광주로 향한다. 광주도 3년만이었다.

지금 보니 차량등급이 현재 운행을 중단한 호남선 누리로다. 나름 레어한 차였나..? 

광주역 역명판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내린건 처음이었다.

관문도 광주송정역이고.. 근데 아무래도 차를 타고 오는 친구들이랑 망월동에 가기에는 광주역이 편하니 여기서 합류하기로 했었다.

 

역앞에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5.18 사적 표지, 광주역 광장

역앞 광장에서 친구 중고 모닝을 타고 우선 밥 먹을 곳을 대충 물색했다.

 

광주역 근처에 바로 전남대가 있으니까 대학가에 먹을 곳이 있지 않겠냐는 말에 네이버로 검색했는데 의견 통일이 안 되어서..ㅋㅋㅋ

아 배고프다 그냥 아무데나 가자 하고 쌈밥집에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맛있었던게 기억난다. 남도는 음식이 최고다.

사진을 찍어뒀어야 했는데 친구들이랑 돌아댕기다보니까 사진을 자꾸 깜빡했다. 친구놈들은 사진에 연연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5.18 민중항쟁 추모탑

밥을 먹고는 바로 망월동 국립묘지로 향했다.

 

상술했듯, 고등학교 문과반 친구들은 정치나 역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진보적 사상을 가진 친구도 있고, 보수적 사상을 가진 친구도 있다.

나는 당시 따지자면 좌측이었다.

나와 친구들, 김포에서.

이 여행에서 뭉친 네 명 중 한 명은 서강대 김의기 열사 추모 행사 집행위원이고

한 명은 불성실한 나랑 같이 탄핵 정국때 광화문을 들락날락거리던 놈이었고

한 명은 고대에서 사회참여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요즘은 로스쿨 공부를 하는 놈이다.

 

최근 여러모로 생각이 바뀌어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오월 광주는 분명히 불변의 가치를 지닌 사건이라 생각한다. 

19살 청년의 묘비

민주묘지를 찾으면 국가의 폭력과 저항하는 시민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비문의 글씨들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18살 청년의 묘비, 별 헤는 밤

고작 40년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숙제.

 

국립묘지를 참배하고는 바로 구례 지리산으로 향했다. 무슨 유스호스텔이었다.

역사의 사연 절절한 지리산에 오르면서 한 해의 마지막을 지내야하지 않겠냐는 뜻이었는데..ㅋㅋㅋㅋ

객기였다, 기름값만 아깝다.

 

결국에야 또 술이나 먹으면서 학교 얘기, 군대 얘기, 역사 얘기, 시시콜콜한 잡담들을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지리산 맛배기라도 하자고 했었는데, 너무 늦게 일어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뭐하지??? 하다가 목포나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목포로 갔다 ㅋㅋㅋㅋ

 

목포는 항구다. 목포항 근처 서해바다

목포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먼 길을 대체 왜 가자고 한건지, 누가 선동(?)한건지도 기억이 안 난다..ㅋㅋㅋ

 

갓바위

대충 목포 명소를 검색해 갔던 갓바위.

확실히 바위 생긴게 신기하긴 하다.

지나가다 발견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월요이라 휴관중이었다.

차창만 내리고 찍었던 목포역.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하는 노래가 떠오른다.

할 것도 없으니 유달산이나 올라보자고 올라갔다.

일제때부터 번성했던 목포 구도심이 보인다.

유달산 비석
이순신 장군 동상

확실히 야트막한 산에 오르니 바다와 도심이 탁 트여 보여서 좋았다.

안개만 좀 덜했으면 전망이 더 좋았을텐데, 그게 좀 아쉬웠다.

어시장도 구경했었는데, 거의 파장 직전이라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이 날은 치킨을 사서 숙소에서 먹고 금방 잠들었던 것 같다.

 

2019년 마지막 날, 밤부터 눈발이 휘날린다 싶더니 그새 창밖이 은세계로 변해갔다.

다음날 아침, 운전담당 친구야 미안해를 외치게 되는 ㅎㅎ;

지가 지리산에 숙소 잡자고 했으니 자업자득이다.

 

마지막날 아침, 그냥 서울로 올라가긴 뭐하니 화엄사에 들렀다.

신라시대때 창건된 화엄사는 지리산자락의 대사찰로, 소장하고 있는 국보만 해도 네 점이나 된다.

화려한 단청이 참 아름답다.

 

다문천왕.. 이거 완전 마타라 오키나 아니냐??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전통건축을 좋아하는지라 눈이 즐거워서 좋았다.

 

한 눈에 봐도 가람배치가 독특함을 알 수 있는데

석탑과 석탑이 마당에서 대칭을 이루지 않고, 금당과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도 않다.

 

각황전 앞 마당에 오르면 그제야 탑과 대웅전이 일직선으로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참배객의 동선을 고려한 배치라고 한다.

 

대웅전과 동탑
각황전과 석등, 서석탑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부조

각황전은 정말 거대하다. 한 컷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세밀하게 짜인 맞보형식 지붕은 감탄을 불러온다.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지을 생각을 한걸까...

 

 

각황전 전면
각황전 측면

아쉽게도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길은 선원 보수공사 때문에 막혀있어 볼 수 없었다.

 

범종루

화각을 보면 정말 핸드폰을 바꾸길 잘 한 것 같다..

 

조치원 어딘가였다.

그렇게 구경을 다 하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어찌보면 정말 막무가내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돌아다닌 여행이었는데,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함께하니 재미있었다.

언제쯤 또다시 뭉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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