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몸속 깊이 빗방울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청승맞게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빈 단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열띤 웃음을 지었다.
시간의 속박에서 풀려난 영속의 무게감을 그땐 아직 알지 못했다.
물길을 따라 산기슭으로 내려왔다. 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낙엽을 그러모아 잠자리를 만들고 열매를 따 먹길 며칠, 시나노(信濃)의 가장 큰 고을에 도착했다.
생경한 저잣거리에서 내가 후지와라의 딸이노라고 외쳤으나 미친 사람 취급만 받았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고 그저 서쪽으로 하릴없이 걸었다.
그 사이 나는 몇 번이나 죽고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다. 죽음은 삶의 일부였고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앓고 나면 지나가는 감기처럼 죽음도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진시황을 한없이 비웃었다.
달이 세 번 차고 기운 뒤에야 헤이안쿄(平安京)에 도착했다.
교토 사람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그런 눈길이 익숙했다.
산죠 거리에 들어서니 그제야 후지와라의 사람들이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았다.
히가시산죠전(東三条殿)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겠다고 떠난 여정이 이상한 모양새로 끝나버렸지만, 어쨌든 그 여자가 남겼다는 물건을 그 여자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은 마음에 들었다.
문을 두드리니 시녀가 매우 놀라워하며 뛰어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지 않으셨다.
기쁜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나는 죽지도 늙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누이들은 이미 혼례를 치렀다.
괴이하다는 눈칫밥을 먹어가며 살아가던 나를 오라비가 쫓아내었다.
울며 문을 두드려봤지만 소용없었다. 평범한 인간과 다른 인간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흘러 다시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며 대문 아래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늙지 않는 나는 시간보다도 걸음걸이가 느렸다.
그 대문 앞에서 서릿발에 얼어 죽은 것이 나의 죽음들 중 가장 서러웠다.
아침이 밝고 나는 태어났다. 후지와라의 딸이 아닌 저주받은 괴물이라는 이름을 다시 달고 태어났다.
고을 사람들은 내게 손가락질했고 돌팔매질했다.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 낙인처럼 나를 옭아매었다. 나는 헤이안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길 없는 산중을 헤매었다. 20년 만의 일이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새 생을 살고 싶었다.
진실로 살고 싶었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삶이 아닌 타인과의 삶을 원했다.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또다시 꾀죄죄하고 의심스러운 행색이었지만 시골 사람들은 순박했다.
흰 머리는 검은 흙과 사철, 오리나무로 매주 검게 염색했다.
양민들의 삶을 흉내 내어 집을 짓고 채마밭을 갈았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소식이 있으면 달려가 도왔다.
경계의 눈초리는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나를 온전히 받아주었다.
1년이 지나고 한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해왔다. 내 마음도 그러했기에 우리는 가정을 꾸렸다.
잔치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축복해주었다. 정을 통해 배도 조금씩 불러왔다.
해산달이 되자 남편은 내 곁을 줄곧 떠나지 않고 돌보아주었다.
첫아이는 아들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행복에 기시감을 느낄 무렵 나는 다시 의심받았다.
지아비는 죽어 삼년상을 치른 지도 오래요, 맏아들은 이미 자식을 본 지 오래인 할머니가 아직도 젊은 날 모습 그대로였다.
아들딸과 마을 사람들에게 나는 죽지도 늙지도 않는 몸이라 토설하였다.
하지만 나는 마을에서 쫓겨났다. 자식들은 저항했지만 집단의 힘은 불가항적이었다.
먼발치에서 자식을 바라만 보는 어미의 심정을 아는가.
산 중턱에 움막을 치고 밤이 깊으면 마을로 내려가 소식을 전했다.
그마저도 마을을 돌던 자경대에 들킨 뒤에는 결딴나버렸다.
밤새 산나물이나 약초 등속을 캐 집 섬돌 위에 올려놓고 빛바랜 창호지를 매만지다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오면 부리나케 도망쳤다.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음날 밤에 집에 찾아가 나물이 없어진 것을 보면 그제야 흐뭇한데 눈물은 흘러내렸다.
요사스러운 것의 새끼라 낙인이 찍힌 자식들에겐 안 좋은 소문들이 따라다녔다.
자식들을 위해 나는 떠났다.
슬퍼 울다 탈진해 죽고, 산짐승에 뜯겨 죽고, 굶어 죽고 목말라 죽었다. 끝없이 죽고 역겹게도 태어났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내게 삶은 곧 고통이었다.
나는 열도를 유랑하며 죽을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바다에 몸을 처넣고 불길에 몸을 맡겼다.
용암에 녹아내려가는 손발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참된 죽음의 고통은 내겐 쾌락과 같았다.
용암 속에서 다시 탄생한 나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수백 번 고쳐 죽었다.
용암이 화산석이 된 뒤에야 죽음을 멈춘 나는 방금까진 뜨거웠던 차가운 돌 위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이래서야 움직이는 무생물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 그게 너무도 슬펐다.
내 가슴 속에 용암의 씨앗이 깃들어 불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불! 불은 찬란하다. 불은 다루는 것은 인간뿐이며 불로 망하는 것도 으레 인간이다.
태울 것이 남아있는 한 불은 죽지 않는다.
인간이고자 하는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불씨는 내 가슴과 온몸을 영원히 태우며 살아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불씨는 내 삶의 증거이다. 무생물이 아님을 증언한다.
이미 온 나라에 흰 머리를 한 소녀에 대한 괴담이 퍼져 마을로 가지 못하게 된 지 수백 년이 지났다.
나를 일반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구태여 그러진 않았다.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를 숨기고 다만 생각하는 인간임을 피력하는 집회에는 몇 번 발을 들인 적이 있다.
번주(藩主)나 절간의 횡포가 심해지면 고을 사람들이 대책을 강구하는 모임을 연다.
그것을 잇키(一揆)라고 하는데, 잇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복면을 쓰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어 자신을 감춘다.
밀고자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분 고하나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하나의 뜻을 지니고 있음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즉 평등의 사상이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인 잇키에 참여할 때에만 나 또한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서글픔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공연히 짜증이 나 잇키의 사람들과 같이 저택과 사찰들을 불태웠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북소리가 마을을 가득 메웠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이런 기형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도 환멸을 느꼈다.
그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마을로 내려가지 않았다. 미친 것은 세상이 아닌 나였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기에, 죽음이 곧 삶이었기 때문에, 이미 죽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영원히 어린 나는, 영원히 죽지 못하는 나는, 영원히 고통 받을 나는 나를 저주했다.
이제는 진시황이 나를 비웃는다.
변곡점이 없는 삶 속에서 지나간 세월을 세는 것도 지친 나는 어느 이슥한 대숲으로 들어섰다.
한 자리에 누워 죽순이 자라고 꽃을 피워 숲이 죽고 다시 자랄 때까지 나도 같이 죽어본 적이 있다.
딱 50년이 걸렸음을 깨달은 나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피는 순간 무상하게도 죽지만 죽순은 다시 자라난다.
수많은 개체로 이루어졌지만 뿌리는 하나요, 닮지 않은 나무는 철저히 배척해 죽여버린다.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도 닮아 있는 숲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죽는 것에도 진저리가 났기 때문에 집을 세워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미혹의 죽림으로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다. 이따금 동물을 사냥하고 산초를 캐며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내가 곧 삶의 증거지만, 누군가 이 대나무 숲으로 찾아왔을 때 내가 여기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달이 밝은 날 술을 마시며 이 글을 남긴다.
실패한 삶에 적응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곳에 누군가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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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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