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큐 타카라즈카선 이시바시역, 여행의 시작

저번주 금요일(12월 11일), 강의들이 연달아 휴강이 뜨길래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겨울 청춘티켓을 이용할 겸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히로시마.

이번 여행은 정말 즉흥적으로 다녀와서 느긋하게 다녔는데, 첫날만은 히로시마로 가는 길에 동방 성지를 들르려고 아침일찍부터 움직였다.

 

JR 우메다역 열차 지연으로 몰려든 승객들. 오전 6시 45분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여행의 묘미인지 끔찍함인지 모를 일이 터졌다.

JR 고베선(산요본선) 히메지행 신쾌속 첫차가 차량 문제로 결편되고 쾌속차로 대체된 것.

 

우리나라로 따지면 무궁화호가 차량문제로 못 가고 승객들을 전부 비둘기호에 밀어넣은 꼴인데.. 새벽 6시에 있을 수 없는 혼잡율에 죽을뻔했다.

 

JR 카코가와역

그렇게 예정보다 늦게, 지옥철을 타고 도착한 카코가와역.

카코가와 하면 노가쿠의 아이오이나 가쿠린지 등이 떠오르지만, 오늘은 카코가와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들렀다.

 

카코가와선 야쿠진행 열차

카코가와선 연선에는 좀 특이한 역명인 야쿠진역(厄神駅), 즉 액신역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히나의 성지..?? 

 

니시와키시역 역사

배차간격 2시간, 2량짜리 시골 로컬선을 타고 도착한 니시와시키역(西脇市駅)

니시와키는 청주 중앙탑처럼, 국토의 정중앙에 있다며 '일본의 배꼽'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고 있었다.

 

니시와키시 종합 시민센터

지인의 친구분께서 니시와키 출신 일본인이랑 결혼을 해서, 저 내일 니시와키 갈지도 모르는데요? 하니까 이곳저곳 명소를 추천해주셨다. 

주 목적은 동방 성지순례였지만 기왕 온 김에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는 여행, 정말 좋아하는 여행방법이다.

 

종합시민센터... 쇼와 느낌이 풀풀 나지만 내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들어가보니 노인대학 수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네 산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일본도 요즘 태양광이 대세라고 엄청나게 많이 깔렸다 ㅋㅋㅋ

스와 갔을때도 일부러 사진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스와대사 바로 앞에 커다란 태양광패널이 몇개나 깔려있는걸 보면 좀 아쉽기도 했다..

 

학교 친구가 니시와키 바로 옆 타카쵸라는 마을 출신이라, 니시와키 왔다고 라인을 날리니 '그런델 왜 갔냐고' 답장이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향인데 '그런데'라니..ㅋㅋㅋ

 

그래도 동방 성지순례 글이니 이쯤에서 니시와키 사진은 마치고 성지순례 이야기로.

이쁜 마을이었다. 너무 번화하지도, 너무 시골이지도 않은 산 속 도시.

 

타카마츠산 쵸메이지

쵸메이지,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장명사. 니시와키에 온 진짜 이유였다.

 

쵸메이지 인왕문

사찰은 시가지에서 한참 떨어진 교외에 위치했는데, 아마도 종단에서 운영하는듯한 유치원이 함께 붙어있었다.

 

인왕문 안의 사천왕상이 최근에 조각했는지 우락부락하게 잘 생겼다. 

 

다 낡아 떨어져가는 나무 표지판
경내로 향하는 계단

12월 초라 단풍 철은 지나고 난 뒤인데도 아직 안 떨어진 단풍이 나무에 몇 붙어있어 좋았다.

 

경내

쵸메이지는 하리마 지방의 사찰 건립에 큰 공을 세운 호도(法道) 선인이 651년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진언종의 사찰로, 이 근방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 주변은 누에를 퇴치한 겐잔미 요리마사의 영지기도 해 요리마사와 관련된 전승도 많이 남아있다.

그때문에 전국에서 유일한 '누에 퇴치상'이 세워져있기도 하다.

 

누에 퇴치의 유래

경내 누에 퇴치의 유래 소개문


닌페이 3년(1153년) 여름, 고노에 천황은 기묘한 병에 걸렸다. 밤이 깊으면 검은 구름이 궁궐을 덮고 누에의 울음소리가 울러퍼져 그때마다 천황은 고통스러워 했다.  약도 승려들의 기원도 효력이 없자 구름 속에 사는 요괴의 짓이 분명하다며 활의 명수였던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에게 요괴 퇴치 명령이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본 요리마사가 힘껏 시위를 잡아당기며 '나무 하치만 대보살 南無八幡大菩薩'이라 마음 속 활에 염을 담으니, 화살이 멋지게 요괴에 명중했다.  추락한 괴물은 요리마사의 가신이었던 소타(早太)가 찔러 죽였다. 불을 비춰보니 머리는 원숭이, 몸은 너구리, 꼬리는 뱀, 손발은 호랑이와 닮은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천황은 감심하여 사자왕이라는 명검을 하사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로부터)

 

 

누에 퇴치상

이게 바로 누에를 퇴치하는 요리마사의 모습이 그려진 누에 퇴치상.

생각보다 커다란 동상이다.

 

메인은 요리마사다보니 훨씬 크고 섬세히 조각되어 있다.

 

누에는 날개가 있는 괴조의 모습이 아니라 너구리 형태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다.

애초에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는지라 뭐가 맞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오사카나 효고 등지의 누에 전승지에서 표현되는 누에의 모습이 거의 다 네발동물인 것을 생각하면, 현대 일본인은 대체로 누에를 너구리 형상으로 여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에 퇴치상 바로 옆에 서있는 공양탑
지장보살상
아미타당
부동명왕당, 왼쪽의 작은 사당도 지장보살같다.

경내 분위기도 차분해 천천히 돌아보기 좋았다.

저 많은 불상은 언제 조각된 유물일까..

 

요리마사 마츠리

매년 4월 쵸메이지에서는 요리마사 축제를 열어 요리마사 공을 기리고, 누에 퇴치를 재현하는 행사를 연다.

그야말로 화살받이가 되어버리는 누에의 모형..ㅋㅋㅋ

 

2018년 누에마사 마츠리

니시와키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소개 영상이 올라와있다.

 

히소나 '누에 성지를 걷다' 中

히소나 작가의 성지순례 가이드북, '누에 성지를 걷다'에도 쵸메이지 이야기가 나와있어 첨부한다.

다만 동인지에 쓰여있는 요리마사의 가비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디로 치워버렸거나, 내가 찾지 못했거나...

 

경내를 벗어나는 계단

그대신 누에 퇴치에 사용한 화살대를 채취했다는 '누에노하시'를 마저 찾으러 간다.

 

누에노하시

인왕문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꺾이는 골목으로 접어들면 정말 작은 실개천 위에 다리가 하나 걸려있다.

 

다리의 이름은 '누에노하시 鵺野橋', 누에의 다리 or 누에벌 다리라는 뜻이다.

 

정말 보기 드문 한자인 鵺라는 자가 적혀있어 이곳이 누에 퇴치 전승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아쉽게도 주변은 개발되어 죽림이 있는지 없었는지도 가늠하기 힘들어졌지만.. 호쥬 누에의 족적이 지명에 남아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느긋한 슬로우 여행, 니시와키에 들른다면 쵸메이지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주소

兵庫県西脇市高松町

효고현 니시와키시 타카마츠쵸

 

가는 방법

JR카코가와선 니시와키시역 하차, 도보 20분

니시와키시역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 2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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