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 와카야마선 타카다행 열차

나라(奈良)는 6세기~8세기 일본 정치의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고 발전하는 공간이었다.

해당 시기 종교를 둘러싼 호족들의 정치적 다툼은 동방신령묘의 배경이 되어 다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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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지방의 성지들 (明日香・飛鳥)

저번주 일본은 금요일이 공휴일이라 금토일이 쉬는날이었다. 비자 때문에 골머리 앓으면서 학교 오가던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친한 일본인 학과 선배가 휴일에 집이나 놀러오라고 해서 바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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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고지 (元興寺)

간고지(元興寺), 우리말로 원흥사. 정겨운 이름을 지닌 간고지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나라의 명찰이다. 일본 최초의 불교사원을 계승한 사찰로,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1998년 세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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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사건들을 동방 캐릭터들과 엮어 설명한 성지순례글은 이미 써놓은게 있으니 링크를 참조바란다.

이번엔 새로 다녀온 성지 소개만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해본다.

 

 

이루카 신사 (入鹿神社)

 

긴테츠 야마토야기역 or JR 우네비역에서 걸어 도보 15분가량 거리에 있는 이루카 신사

 

이루카 신사 토리이

마을의 한가운데 주택가에 밀착해 서있는 이루카 신사는, 소가노 이루카를 모시는 일본의 유일한 신사다.

하츠모데(첫 참배) 기간이라 경사스럽다는 대나무와 솔잎으로 장식되어있는 토리이가 이색적이다.

 

을사의 변 때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에게 목을 베여 죽은 이루카.

그 목이 여기까지 저절로 날아와 묻혔기 때문에 이루카 신사가 세워졌다는 전승이 있다.

그래서 이루카 신사는 목보다 위, 즉 머리에 영험을 가진 곳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그때문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나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카시하라시 지정 문화재 / 이루카 신사 본전

을사의 변 당시 카마타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이루카를 죽였는데, 이루카를 존경하는 이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닭을 절대로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명절이 되면 닭고기를 씹어먹으며 원혼을 달랜다고..

 

이래저래 이런 지역 전승을 보다보면 신기한게 많다.

 

원령「이루카의 벼락」

죽은 이루카가 산 카마타리를 저주해 죽였다는 설화는 소가노 토지코의 오버드라이브 스펠 원령「이루카의 벼락」로 재현되었다.

 

 

오오미와 신사 (大神神社)

 

오오미와 신사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 미와역은 하츠모데 기간만 되면 '특별 개찰구'가 설치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태어나서 처음 통과해보는 기간 한정 특별 개찰구.

승강장 끝을 개조해서 검표원을 뒀다. 신기방기.

첫 참배 기간인지라 축제 분위기로 붐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오미와 신사를 찾는 이유는, 오오미와 신사가 다름아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기 때문이다.

오오미와 신사 토리이

 

오오미와 신사 홈페이지의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오오미와 신사의 창사에 관한 전승은 『고사기』나 『일본서기』 신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사기에 따르면, 오오모노누시(大物主)가 이즈모의 오오쿠니누시(大国主)앞에 나타나 쿠니유즈리를 완수하려면 본인을 미와산에 모시라고 하여, 오오모노누시는 오오미와 신사 뒷산인 미와산에 진좌했습니다.

 

이렇게 신화에 신사의 창건 기록이 명료히 적혀있는 것은 귀중한 증거로, 오오미와 신사가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신사로 인식되어 왔음을 증언하며, 모셔진 신들의 신격도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천황의 명령을 받아 오오미와 신사를 세운 사람이 이카가시코오(伊香色雄)인데, 이카가시코오는 모노노베씨의 조상으로, 후토와도 관련이 생긴다.

 

 

오오미와 신화전

후토의 테마곡 오오미와 신화전은 오오미와 신사에서 따온 것으로, 유서깊은 모모노베가의 내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오오미와 신사 배전

오오미와 신사에는 배전만 있고 본전이 없는데,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미와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스와대사도 신성한 산(= 카나코)을 신으로 모셔 본전이 없던게 떠오른다.

새해 첫 오미쿠지 뽑기에 몰려든 사람들

워낙에 유명한 신사다보니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1월 2일에 이 정도였으니 1일에는 어떘을까..

오마모리 파는 곳
신사 참도 양 옆으로 난 숲이 울창하다.

 

이소노카미 신궁 (石上神宮)

 

미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JR 텐리역.

이 텐리시는 일본에서도 여러모로 유명한데..

천리교 본부, 지바

텐리시는 일본의 종교 중 하나인 천리교(天理教) 본부가 있는 곳으로, 자타공인의 종교도시이다.

 

천리교 신자

상점가를 걷다보면 알 수 없는 불경 비스무리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곳곳에 향 피우는 냄새가 자욱하다.

천리교 글자가 박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과도 계속 마주치는데, 이 도시 인구의 65% 이상이 천리교 신자라 한다.

천리교 특유의 종교건축물도 곳곳에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방 성지순례 하러 온 건데 신토도 불교도 아닌 이상한(?) 종교의 분위기에 휩싸여 굉장히 묘했다.

 

메인 도로에는 아예 천리교 문장이 일장기와 나란히 걸려있을 정도니.. 이 도시의 종교색을 짐작케한다.

천리교 본부에도 들어가볼까 하다가 좀 무서워서 못 들어갔다.

 

사학과 친구 중 한 명이 천리교를 다녀 어릴때 여름 캠프를 다녀온 얘기를 들려줬는데, 별거 없는 그냥 평범한 종교라고는 했다.

나야 잘은 모르겠지만..

 

이소노카미 신궁 석표

여튼 텐리역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보면 이소노카미 신궁 입구에 도착한다.

공교롭게도 천리교 본부를 지나야만 신궁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본부쪽에 사람이 훨씬 많다..ㅋㅋㅋ

여기서는 천리교가 제일이고 신토는 찬밥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래도 첫 참배 기간이라 포장마차가 어느 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부적 등을 태우는 사람들

이소노카미 신궁이 모시는 신의 이름은 후츠노미타마(布都御魂)다.

후츠노미타마는 타케미카즈치의 보검으로, 이후 모노노베 가문이 맡아 대대로 신앙했다고 한다.

콧등이 반질반질한 소

모노노베노 후토(物部布都)의 이름은 이 후츠노미타마(布都御魂)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모노노베 씨족은 고대 야마토 정권의 군사를 담당했는데, 이소노카미 신궁은 무기고로서도 기능하였기 때문에 검을 모신게 아니냐는 설이 있다.

칠지도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고 여겨지는 칠지도(七支刀) 또한 이소노카미 신궁의 창고에서 발견되었고, 지금도 신궁에서 보관 중이다.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물적 교류와 함께 당시 모노노베씨의 정치적 입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소노카미 신궁 본전

칠지도와 모노노베씨로 유명한 신궁인지라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워낙 이쪽 지방의 봉기(一揆)가 심해서 전국시대때 오다 노부나가가 신사를 몰수하고 대폭 축소시켰다고.

 

본전 입구 중문

그럼에도 모노노베의 신앙은 유지되어, 1871년에 다시 신사가 세워지고 부흥했다고 한다.

새벽을 밝히는 동물로 고대로부터 신앙된 닭.

이소노카미 신궁에선 닭을 신의 사자로 생각해 30여 마리의 닭을 풀어 기르고 있다.

계사

신사에 사슴이 돌아다니거나 원숭이가 출몰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닭은 처음 보았다.

흰 뱀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던데 언젠가 가보고싶다.

 

 

변화「후타츠이와 가문의 재판」
후토가 닭으로 변한 모습

심기루, 심비록, 빙의화에서 등장하는 마미조의 스펠카드 변화「후타츠이와 가문의 재판」은 대상을 동물로 변화시키는데

후토는 이소노카미 신궁의 닭에서 따와 그릇에 올라탄 닭으로 변화한다.

 

후에 쿠타카가 등장한걸 생각하면 이쪽으로도 네타의 활용 여지가 있을지도..?

 

 

2021년 1월 2일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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