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동안 장마가 퍼부어서 많이 지쳤었는데, 어제 장마가 개길래 기분전환 겸 당일치기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역시 오사카역에는 사람들이 많다

 

덜컹거리는 긴테츠 오사카선 급행열차를 타고 미에현 이가시 아오야마라는 동네로 향한다

약 2시간만에 아오야마쵸역 도착

아오(阿保) 마을은 나라현과 미에현 마쓰자카를 잇는 하세 가도에 형성된 오래된 역참 마을이다.

마을 초입의 오래된 가게 앞에는 오오무라 신사 석표가 서있고 표지판도 마련되어 있다

역에서 10분정도 걸어가니 타난 첫번째 목적지, 오오무라 신사(大村神社)

오오무라 신사 토리이

오오무라 신사는 서력 927년에 쓰인 서적 『연희식 延喜式』에 이름이 수록되어있는 오래된 신사로, 먼 옛날부터 이 지방 신앙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오오무라 신사 경내에서는 고분군이 발굴되어서, 적어도 6세기에는 어떠한 제례가 바쳐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토리이 안쪽으로 보이는 참도 계단길이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오무라 신사에서는 '오오무라노카미 大村神'를 주신으로 모시고, 함께 배향된 배신으로는 타케미가즈치, 후츠누시, 아메노코야네를 모신다.

배신 3위는 '카스가 삼신 春日三神'으로도 불리는 신들인데, 오오무라 신사에서는 767년부터 모셨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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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마 신궁 요석 (鹿島神宮 要石)

이바라키 여행 중 들르게 된 동방 성지, 카시마 신궁 카시마 신궁은 일본 전국에 산재한 카시마 신사의 총본사이자 히타치국 이치노미야(常陸国一宮)이다. 카시마 신사(鹿島神社)란, 카시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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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미가즈치에 대해서는 카시마 신궁 성지순례기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참조 바란다.

흑백 필터 씌우고 찍어본 참도

오오무라 신사에서 모시는 오오무라노카미, 즉 오오무라의 신은 해당 신사에서만 모시는 특이한 신이다.

그 정체는 아오 지방 일대에 농업을 전파하고 마을을 번성시킨 위대한 지도자라 여겨지는데, 일설에 따르면 '아오무라'가 와전되어 '오오무라'가 되었다고 한다.

고사기나 일본삼대실록 등 고문헌에서는 아오 지방을 다스린 고대 호족(이자 신)의 이름이 이코하야와케노미코토(息速別命)라 밝히고 있다.

이가성 영주의 가신 토도 겐보(藤堂元甫)가 1761년 작성한 지리지 『삼국지지』에 따르면, 아오 지방에 정착한 이코하야와케노미코토가 땅을 윤택하게 하고, 처음으로 신사를 지었다는 전승이 있었다고 꽤나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오오무라 신은 아오 마을을 개척한 조상신으므로, 오오무라 신의 본질은 '아오 마을을 보호하고 자손들을 수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오오무라 신은 '지진을 막아주는' 신으로 변하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물이 흐르지 않는 테미즈야

1854년 미에현에서 일어난 안세이 대지진 때에는 신기하게도 아오 마을에서만 피해가 적었고, 이후 오오무라 신사는 지진을 막아주는 신으로 전국적으로도 명망이 높아진다. 1923년 관동 대지진, 1927년 키타탄고 대지진, 1944년 쇼와 도난카이 대지진 등 지진이 날 때마다 수많은 참배객들을 끌어모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렇게 오오무라 신의 본질이 마을의 수호신에서 지진의 신으로 변모한 이유는, 창건 이후 배향된 카시마 삼신의 영향이 가장 크다.

 

카시마 요석 진도

링크한 카시마 신궁 성지순례기에서 이미 다뤘지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카시마 삼신 중 한 축을 담당하는 타케미가즈치는 지하에 사는 거대 메기 오오나마즈(大鯰)를 돌로 눌러 진정시키는데, 이 돌의 이름이 다름 아닌 요석이다. 고대 일본인들은 오오나마즈가 움직일 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믿었으므로, 타케미가즈치는 요석으로써 지진을 막아주는 고마운 신인 것이다.

 

배전 모습
배전 내부

 

오오무라 신의 정체인 고대 호족 이코하야와케노미코토는 지진과 관련있는 기록이 없으므로, 오오무라 신의 '지진 피해를 막아주는' 특성은 타케미가즈치에서 빌려왔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토착신 오오무라 신에 대한 신앙에 카시마 신앙이 흡수되어, 타케미가즈치와 오오무라 신이 동일시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오오무라 신사 유서기

 

당사는 연희식에 이름이 기재된 오래된 신사로, 제신 오오무라노카미는 제 11대 스이닌 천황의 아들(이케하야노미코토)로, 이세 신궁에 모셔진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姫命)의 남동생이다. 사역은 처음 신사가 지어진 이래로, 주신과 그의 자손이 대대로 거주하며, 야마토 문화의 유입, 토지・산업의 개발에 진력하여, 이가 남부 일대의 총사로 폭넓게 숭상되어왔다.

함께 배향된 타케미가즈치는 진고케이운 원년 (767년) 히타치 시모사(*지금의 이바라키 일대)에서 야마토의 미카사산(*지금의 나라 카스가 대사)에 권청될 때 오오무라 신사에 들러 모시게 되었다. 함께 모셔진 요석은 땅을 진정케 하고 지진을 막아주는 신앙을 모으고 있다.

 

배전 난간에 늘어서있는 메기 인형들
에마에 그려진 메기
요석사 앞의 메기 석상. 물을 끼얹으며 기도를 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지방의 토착신이자 지진의 신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오오무라 신사에서는 당연하게도 메기와 관련된 조형물도 여럿 찾을 수 있다.

경내 한 편에 서있는 요석사

지진 수호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동방에선 비상천 / 비상천칙 히나나위 텐시가 사용하는 무기로 잘 알려져있는 요석.

대지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텐시에게 잘 어울리는 소품이다.

요석

요석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게임 내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커다란 바위에 금줄이 둘러져있다.

경내 모습

오오무라 신과 타케미가즈치의 관계, 동방과 얽힌 이야기도 물론 재밌지만, 신사 자체의 분위기도 고즈넉하고 고풍이 있어 참 좋았다.

어느 이끼 낀 석등
에도시대에 세워진 종루
고목 둥치 틈새에 마련된, 풀벌레가 드나드는 아주 작은 사당
배전과 경내

어제 일본에는 열사병 경보가 발령되고, 미에현은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 장마 뒤의 폭염을 자랑했는데

신사 더부살이 고양이들도 더위에 지쳐 쓰러져 사람이 오든 말든 뻗어서 누워있었다 ㅋㅋ

경내 사진을 찍다 돌아오니까 한 마리는 땅도 뜨거웠는지 의자에 올라가 있다

신사의 고양이들은 언제나 사람 손을 잘 타서 좋다

여행 중에 만나는 동물들도 참 동방 성지순례의 묘미다

열차 시간이 되어서 떠나려니까 쓰다듬어달라고 부비적대는걸 떼어놓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다시 긴테츠 열차를 타고 20분 남짓, 나바리역에서 내려 마을 버스에 올라탄다.

시모히나치(下比奈知) 정류장에서 하차.

배차간격이 기니 시각표를 잘 참조해야한다.

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낡아 떨어져가는 나이 신사(名居神社) 이정표

테미즈야

일본서기에 따르면, 스이코 천황 7년 (599년) 여름에 야마토 지진을 중심으로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를 스이코 지진이라 하는데, 일본 역사상 최초로 피해 기록이 남은 거대 지진이었다.

 

그 뒤, 각지에 지진의 신 나이노카미(なゐの神)를 모셔 땅을 다스리고자 했는데, '나이'란 일본의 고어로 지진을 뜻한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일본 언어 지도'에 따르면, 사투리로 지진을 '나이' 또는 '나에'라 부르는 지역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지진의 일본어 고어 なゐ는 먼 옛날엔 '나위'라고 읽었지만 지금은 음가가 소멸되어 '나이'라고 읽는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ゐ를 모르는건 아니라 개중에는 '위'라 읽는 사람도 있고 히나나이 텐시도 '히나나위 텐시'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나이로 통일한다.

신사 본청에 따르면 미에의 나이 신사 이외의 나이 신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오랜 기간을 거치며 잊혀지거나 이름이 바뀐게 아닐까?

즉 미에현 시모히나치의 나이 신사는 599년 세워진 대지진의 기억을 전하는 유일한 생존자인 것이다.

 

연희식 내사 나이 신사 유서비

 

「일본서기」에 따르면 스이코 7년 (599년) 야마토 지방을 중심으로 한 대지진이 있어 각 지방에 지진의 신이 모셔졌다.

이가에서는 해당 나이 신사가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나이 ナイ」란 지진의 고어를 일컫는다.

에도시대에는 쿠니츠다이묘진(*国津大明神. 여기서의 쿠니츠는 쿠니츠가미가 아닌 지명)이라 칭해져 히나치 강 상류의 산재하는 쿠니츠 신사의 총사로 기능했다.

 

나이 신사에 도착하니 마을 어르신들이 경내에 의자를 두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마을에 노인들밖에 남지 않아서, 신사 축제 날짜를 줄여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나이 신사 현판

깡촌 출신 친구 고향집에 놀러갔을 때 비 내리는 이나리 신사 처마 밑에서 신사 청소나 축제 같은 일들은 마을 자치회가 도맡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도 청년이 부족해 점점 일손이 부족하다는 한탄을 했었다.

그 친구도 올해 취직을 해 도쿄로 떠났다, 씁쓸한 일이다.

 

외부인이 듣기엔 무거운 주제인지라 사진도 많이 찍지 않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이 신사 햐쿠도이시(百度石)

지진의 신을 모시는 미에의 신사 두 곳을 돌아봤는데, 각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오의 오오무라 신사는 본디 토착신 오오무라노카미를 모시는 신사였지만, 타케미가즈치가 습합되어 지진을 다스리는 신사가 되었고 시모히나치의 나이 신사는 처음부터 지진의 신 나이노카미를 모시는 신사였음

 

이러한 복잡한 상관 관계는 동방비상천 텐시의 오마케 텍스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비상천 오마케 텍스트파일 히나나이 텐시 부분

오마케 텍스트에 따르면, 동방 세계관에서 지진을 다스리는 천인(신)은 오오무라노카미였고, 그 아래에 나이 일족이 있어 지진의 신을 섬겼는데 또한 나이 일족 아래에 다시 히나나이라는 일족이 있어 나이 일족을 섬겼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오오무라 > 나이 > 히나나이의 수직 관계이다.

 

그 히나나이 일족의 천인 나부랭이가 비상천에 등장하는 텐시라는 것인데, 확실히 지위가 낮은걸 보면 나부랭이라 할만하다 ㅋㅋ

이러한 점에서 미루어보아, 오오무라 신사와 나이 신사는 텐시의 출신과 신분을 증명하는 비상천의 중요 성지임이 틀림없다.

 

 

히나나이 텐시의 성인 '히나나이 比那名居'에서 나이名居는 지진을 뜻하는 고어에서 따온게 확실해 보이는데, '히나 比那'는 어원을 알 수 없다.

나이 신사는 '히나치 比奈知' 마을에 있는데, ZUN은 나이 신사가 서있는 땅에서 텐시의 이름을 따온게 아닐까?

 

오오무라 신사

 

주소

三重県伊賀市阿保1555

미에현 이가시 아오 1555

 

가는 방법

긴테츠 오사카선 아오야마쵸역 하차, 도보 15분

나이 신사

 

주소

三重県名張市下比奈知2092

미에현 나바리시 시모히나치 2092

 

가는 방법

긴테츠 오사카선 나바리역 하차

미에교통 시모히나치행 버스 10분 소요

나바리역에서 도보 4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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