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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신을 모시는 미에의 신사들

열흘동안 장마가 퍼부어서 많이 지쳤었는데, 어제 장마가 개길래 기분전환 겸 당일치기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역시 오사카역에는 사람들이 많다 덜컹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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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성지순례기에서 이어진다. 같은 날 다녀온 또 다른 성지순례.

 

긴테츠 오사카선 야마토아사쿠라역에서 내린다.

많이 굽어있는 승강장 선로 형태가 재미있다. 철덕이었으면 좋아했을듯

 

 

딱 봐도 관리가 안 되어 보이는 교외의 낡은 무인역.

나라현 사쿠라이라는 오래되고 유서 깊은 마을에 서 있다.

 

 

역 주변에는 논밭이 펼쳐져있고 민가가 드문드문 보인다.

성지 주변으로 가는 버스편이 거의 없었는데, 그럴만한듯하다.

 

미와산

 

한참을 걷다보면 야트막한 산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해발 467m의 미와산(三輪山)이다.

미와산은 신이 깃든 신으로 숭상받는 존재로, 일본 최초의 신사인 오오미와 신사에서 신성시하는 장소이다.

 

신령이 깃든 자연물은 일본 신토에서 칸나비(神奈備)라 한다.

미와산은 오오미와 신사의 칸나비인 셈인데, 산의 신인 야사카 카나코(八坂神奈子)의 이름도 이 개념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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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난무, 나라의 신사들

나라(奈良)는 6세기~8세기 일본 정치의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고 발전하는 공간이었다. 해당 시기 종교를 둘러싼 호족들의 정치적 다툼은 동방신령묘의 배경이 되어 다뤄지기도 했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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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미와 신사에 대해서는 링크한 순례기에서 다룬 바 있다.

 

장마로 유량이 불어난 야마토가와

 

오오미와 신사는 대대로 모노노베 씨족이 관리해온 신사기도 하다.

동방신령묘 모노노베노 후토의 BGM이 '오오미와 신화전'인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일본 최초의 신사가 이 지역에 세워졌을 정도로 사쿠라이는 고대 일본의 중심지로서 기능했고, 수많은 사적이 산재해있다.

사진 속의 강 이름도 근본 넘치는 '야마토가와 大和川'다.

 

 

역에서 20분 가량을 걷다 보면 야마토 강 둔치에 이런 커다란 비석이 서있다.

불교 전래지 비석, 첫 번째 성지다.

 

불교 전래지 현창비

 

불교 전래의 땅

 

이곳 일대는 시키노미즈카키노미야(*磯城瑞籬宮, 스진 천황의 거처), 시키시마노카나사시노미야(*磯城嶋金刺宮, 긴메이 천황의 거처)를 비롯해 일본 최초의 시장 츠바이치(海石榴市) 등의 사적이 남아있던 고대 야마토 조정의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이곳 부근은, 오사카만에서 야마토 강을 거슬러 올라온 해운의 종착지로, 야마토 조정과 외교 관계를 가진 다양한 나라의 사절이 오고 가는 수도의 외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다했습니다.

 

'긴메이 천황 13년 10월, 백제의 성왕은 달솔 노리사치계를 파견해 석가불 금동상 1구, 깃발과 우산, 불경을 선물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백제의 사절도 이 항구에 상륙해 긴메이 천황의 거처로 향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장소는, 불교가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진 기념비적인 장소인 것입니다.

 

또한 '스이코 천황 16년, 견수사 오노노 이모코가 수나라 사신 배세청과 함께 귀국하여 아스카의 수도에 들어갔을 때, 치장한 말 75마리를 마련해 츠바이치에서 맞이했다'고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 땅의 역사적 유서와 아름다운 일본 문화를 낳은 원천이 된 불교 전래의 문화적 의의를 널리 영원토록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여기에 현창비를 건립합니다.

 

 

한국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불교의 공인은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왕권 강화 수단이었고, 그를 통해 국가 체제가 정비되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것이다.

백제의 승려 노리사치계는 이 나루터에서 처음으로 일본에게 불교의 세계를 전파하였고, 그 후 불교는 일본에 신속히 정착된다.

 

 

정착 과정에서 불교를 배격하는 파벌인 모노노베 씨족과 불교를 숭상하는 소가 씨족 + 쇼토쿠 태자가 전쟁을 벌여 소가 씨가 승리했다는 역사도 익히 알려져있다.

동방에서는 신령묘 스토리의 배경이 되어, 절에 불을 지르는 방화범 후토의 네타가 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땅이 그만큼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임을 비석이 상기시켜준다.

흐르는 강을 통해 전해진 새로운 문물과 개념은 일본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시장이었다.

 

츠바이치 터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야마토의 항구에서 200m 떨어진 곳.

이곳은 일본 최초의 시장 츠바이치(海石榴市)가 세워진 곳이다.

 

츠바이치에 대해서는 이전에 쓴 텐큐 치마타 - 이치가미에 대한 고찰글에서도 다뤘으니, 부디 참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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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미란 무엇인가

이 글은 전적으로 시장의 신 '이치가미 市神'에 집중하여 쓴 고찰글로, 동방의 '텐큐 치마타'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습니다. 텐큐 치마타가 이런 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구나, 하고 읽어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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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고대의 시장 츠바이치가 있던 장소입니다.

 

당시 미와・이소노카미를 거쳐 나라로 향하는 야마노베의 길(山の辺の道)・하세로 향하는 하세가도(初瀬街道)・아스카 지방으로 향하는 이요와의 길 (磐余の道)・오사카 카와치 이즈미 등지에서 연결되는 타케노우치 가도 (竹ノ内街道) 등 고대의 길은 이 곳에서 교차했으며, 또한 오사카 나니와에서 올라오는 배편도 이곳에서 성시를 이뤘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젊은 남녀가 모여 서로 노래를 읊어주는 우타가키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후대에는 이세・하세데라 참배가 인기를 얻으며 여관 마을로도 융성했습니다.

 

설명문에 나와있듯이, 츠바이치는 고대 일본의 수많은 길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목적지였다.

조선시대에 서울로 향하는 영남대로와 호남대로가 만나던 천안 삼거리 시장이 번성했던 것처럼, 츠바이치도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시장이 세워지고 물산이 오간 것이다.

츠바이치 관음당

 

그 활기 차던 1500년 전 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오가던 상인들과 손님들의 안전을 기원하던 츠바이치 관음보살당은 아직도 남아있다.

 

나는 이 츠바이치가 텐큐 치마타의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성지라고 거의 확신한다.

 

 

홍룡동 오마케 파일에 따르면, 환상향에서 '최초의 시장'을 개최한 사람은 텐큐 치마타이다.

시장을 주관하는 신으로서 치마타는 소유권을 전환시키고, 각종 상품의 유통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는 츠바이치에서 처음 나타나는 일본 민속의 시장의 신 '이치가미'의 특성과 상통하며, '최초의 시장'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닮아있다.

 

츠바이치 터에 있는 와카 비석

한편 고대로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던 츠바이치는 다양한 문헌 기록에도 등장하는데,

만엽집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와카에서는 츠바이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紫は 灰さすものそ 海石榴市の 八十のに 逢へる児や誰

무라사키와 하히사스모노소 츠바이치노 야소노치마타니 아에루코와 다레

보랏빛 염색은 동백꽃을 태운 재로 한다는데, 츠바이치의 사통팔달하는 갈림길에서 만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지장보살상

 

츠바이치 시장통에서 만난 여자에게 이름을 묻는 로맨틱한 시가인데, 주목할 점은 츠바이치에 덧붙여진 미사여구이다.

고대 일본인 남성인 작자는 츠바이치를 '야소노 치마타', 즉 온갖 만물이 교차하는 갈림길이라 비유했다.

 

기부「하늘의 야치마타」

 

동방 설정 깨나 파본 사람이라면 풍신록 아야의 1번 스펠이 기부「하늘의 야치마타」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야치마타란 하늘이 사방팔방으로 갈라진 갈림길을 뜻한다.

 

고대 일본인은 시장이 '갈림길', 또는 '거리' 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인지하여 시장에 붙이는 꾸밈말로 '치마타'를 택했다.

 

 

ZUN 또한 아마도 시장의 신 치마타를 기획하며 여러 문헌들을 찾아보고 상술한 와카도 접했으리라 생각된다.

일본 최초의 시장 츠바이치에 붙여진 최초의 미사여구, '치마타'가 텐큐의 이름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츠바이치에서 다시 20여분을 걸어가다보면 미와 에비스 신사(三輪恵比寿神社)에 도착한다.

 

 

 

일본 최초 시장 수호 신사

미와 에비스 신사 유서략기

 

당 신사는 야에코토시로누시(八重事代主命) 외 2위를 모신 일본 최초의 시장 츠바이치의 수호 신사로서

아주 먼 엣날 유구한 시대에 창건되어 '츠바이치 에비스'라 불리며 에비스 신앙의 본원이 된 야마토의 신사입니다.

현세와 저승 양 세계에 두루 미치는 신덕이 있다고 공경받고 있습니다.

 

수호 천사도 아니고 수호 신사라는 네이밍이 좀 낯설고 신기하긴 하다.

어쨌든 미와 에비스 신사는 츠바이치를 수호하던 일본 최초의 시장 수호 신사로, 지금도 상업 번창 등의 다양한 효력으로 참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미와 에비스 신사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926년 7월의 홍수로 야마토 강이 범람해 츠바이치가 완전히 침수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시장은 그다지 멀지 않은 미와의 해당 자리로 옮겨와, 신사 또한 이 자리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츠바이치의 명맥은 이어져와 미와 에비스 신사 주변에는 주택가와 함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미와의 하츠이치(三輪の初市)라는 풍습이 있어

매년 새해 첫날 처음으로 열리는 이곳의 시장에서는 시장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축제를 연다고 한다.

 

 

배전 옆 등불에 달려있는 '일본 최초 시장'이라는 다부진 문구의 자부심이 대단해보인다.

 

 

풀숲 사이에 가려져있어 제대로 찍기 어려웠지만, 테미즈야의 중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중략)

당 신사는 크게 번성하여 미와의 시장의 수호신으로서, 또한 수많은 시장들의 신으로서 상인들의 존경을 얻었으며,

특히 하츠이치(새해 첫 시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번성했다고 전해집니다. (후략)

 

당연한 사실이지만 미와 에비스 신사의 신앙은 에비스 신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엄연히 '시장의 신'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상인들에게 사랑받았다.

아마도 시장의 신 이치가미라는 정체성을 온존시키며 에비스의 권위를 빌려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든게 아닐까?

 

 

일본 최초의 시장과 그를 수호하는 수호 신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츠바이치와 미와를 찾아 시장의 신 텐큐 치마타를 기려보는건 어떨까?

 

 

가는 방법

JR 미와역 or JR&긴테츠 사쿠라이역 or 긴테츠 야마토아사쿠라역 하차 뒤 도보

 

하차역은 여정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절하면 된다.

미와 에비스 신사는 미와역 바로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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