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과 긴테츠가 공동 이용하는 마츠사카역 역사

저번 겨울에 긴테츠 2일 패스권이 풀렸길래 친구랑 1박2일로 번개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 겸사겸사 동방 성지들도 들렀는데 묵혀뒀다가 갈무리해 지금 올려본다.

 

첫 번째 목적지는 마츠사카

마츠사카는 미에현 중동부에 있는 도시인데, 소고기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와규 하면 마츠사카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

오전 일찍 도착한지라 식당이 안 열어서 먹어보진 못했다

역에서 걸어서 20분정도 걸리는 곳에는 마츠사카 성이 있다

이시가키와 계단
천수대 부근

축벽(이시가키)이나 각종 망루 터는 남아있지만 내부 건물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는 전형적인 일본 성터 모습

겨울방학이라 그런지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캐치볼 하면서 놀고있었다

천수대에 오르면 성 안쪽에 자리잡은 고택을 내려다볼 수 있다

저 고택이 이번 순례의 목적지, 스즈노야이다.

스즈노야에 입장하기 위해선 우선 모토오리 노리나가 기념관에서 티켓을 사야한다

내부 모습

작은 지방도시 박물관 치고는 전시물들이 정말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초상

1703년 마쓰자카에서 태어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일본의 학자다.

8살 무렵부터 공부를 시작한 노리나가는 23살 때 교토로 상경, 유학과 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들을 받아들였다.

그 뒤 28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생업을 위해 소아과를 차리고, 각종 고전을 탐닉하며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노리나가는 와카, 한자음 상고, 지리, 천문, 역법 등 다양한 연구를 하였지만

그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연구는 '고사기전' 편찬이다.

 

고사기란 일본 고대의 신화와 역사를 담은 서적인데, 18세기까지 전해지고는 있었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는 없었다.

자국의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한다고 생각한 노리나가는 일생을 바쳐 고사기를 연구하고, 내용을 해석한 주석서인 '고사기전'을 펼쳐냈다.

이는 일본 국학 진흥의 커다란 마중물이 되었고,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바탕으로도 작용했다.

 

코로나 관련 방문객 명부 안내, 익살스럽게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적혀있었다

 

기념관에는 모토오리의 저술과 그가 사용하던 물건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부 촬영이 금지라 사진은 없지만, 고사기를 통해 고대 지명을 복원하기 위해 노리나가가 직접 그린 일본 전도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압권이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동방영나암의 등장인물 모토오리 코스즈의 모티브이다.

아큐의 모티브인 히에다노 아레가 고사기를 암송한 인물인 것과 짝을 맞춰, 코스즈의 모티브인 노리나가는 고사기를 해석한 인물인 것이다.

 

코스즈는 온갖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고문헌에 해박했던 노리나가와도 잘 어울리는듯하다.

국가 지정 특별사적

모토오리 노리나가 구 자택 「스즈노야 鈴屋」

 

일본의 문화재 관리 제도에는 '특별사적'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적 중에서도 학술적 가치가 특히 높고 일본 문화의 상징이 되는 곳을 특별사적으로 따로 지정한다.

그만큼 이곳이 중요한 사적이라는 뜻이다.

 

이 집은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2세 무렵부터 세상을 떠난 72세까지 거주한 곳으로, 그의 조부가 은거지로써 겐로쿠 4년(1691)에 세운 것이다. 노리나가는 이 집에서 의사 업무를 지속하며, 고전의 강의를 하거나, 연회를 열곤 했다.

2층에 위치한 서재는 노리나가가 53세 때에 창고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토코노마에 방울을 걸어두었으므로 '스즈노야 鈴屋'라고 불리었다.

본디 우오마치에 있던 것을 보존공개를 위해 메이지 42년(1909)에 현재 장소로 이축하였다. 해당 자택 터에는 노리나가의 자식 하루니와의 유적이 남아있다.

 

미세노마(店の間)

환자들을 맞이하고 진찰하던 방이다.

오쿠노마(奥の間)

귀중한 손님을 접대하거나 생활공간으로 쓰이던 방이다.

오쿠노마와 부엌 사이에는 서재 스즈노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스즈노야는 현재 일반 공개되어있지 않다.

밖에서 바라본 저택의 2층 스즈노야

스즈노야에서 노리나가는 수많은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본인도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 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리나가가 소장하고 있던 방울들.

 

일본어로 '스즈'는 방울을 의미한다. '스즈노야'는 말 그대로 방울이 있는 방

노리나가는 방울 소리를 좋아해 여러 방울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스즈노야는 그의 호기도 했다.

 

코스즈가 작중에서 운영하는 대본소 스즈나안(영나암)은 스즈노야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래저래 노리나가랑 연관이 참 많다.

모토오리 신사 토리이

성 남서쪽으로 내려와 조금만 걷다보면 나오는 신사, 모토오리노리나가노미야(本居宣長ノ宮)

경내 모습

마을 사람들이 몇 명 참배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본전 모습

노리나가와 그의 스승을 신으로 모시는 당 신사는 학문의 신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다고.

성과 바로 이어져있는 성하촌

신사 동쪽에는 고죠반야시키(御城番屋敷)라고 해서, 에도시대에 지어진 저택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하촌 마을답게 무사들이 살던 저택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제 생활 공간이다.

 

마쓰자카는 성을 중심으로 도보권 내에 의미있고 이색적인 볼거리들이 많아 참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이었다.

긴테츠 이스즈가와역

마쓰자카에서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긴테츠 열차를 타고 이스즈가와역에 내린다.

그 뒤 버스를 타고 이세 신궁으로 향한다.

일본 정신문화의 수도,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불리는 이세.

먼 옛날부터 이세 신궁 참배는 항례행사처럼 이루어졌는데, 그때문인지 이세 신궁 앞에는 커다랗고 오래된 상점가가 형성되어있다.

오카게 요코쵸

오카게 요코쵸(おかげ横丁)라는 이름의 상점 거리는 코로나 유행에도 불구하고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점심때라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우선 향했다.

오가는 참배객에게 재빨리 내놓을 수 있어 특산품이 되었다는 이세 우동.

국물이 없고 간장 장국만 있어 금방 먹을 수 있는게 특징이다.

 

친구가 예전에 가보았다는 가게에서 먹었는데 정말 싸고 맛있었다.

이세 신궁 내궁의 토리이와 우지바시

이세 신궁(伊勢神宮)은 일본의 수많은 신사를 총괄하는 총본산이다.

그 상징성때문에 한국인이 불국사를 한 번씩 가보는 것처럼, 일본인도 이세는 꼭 한 번씩 가본다고.

이세 신궁은 내궁과 외궁으로 나뉘어 크게 두 곳이 있는데, 내궁에서는 아마테라스를 모시고 외궁에서는 토요우케비메를 모신다.

아마테라스는 일본 창세신화의 태양신이고, 토요우케비메는 식량과 곡물을 관장하는 여신. 둘 다 일본 신화에서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2013년 식년천궁 당시의 사진

이세 신궁은 그 역사나 상징뿐만아니라 식년천궁(式年遷宮)이라는 제도로도 유명한데

20년마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신을 옮겨 받드는 풍습이다.

 

그 이유는 고대로부터 전승되는 신사 건축법을 후대에 전하기 위함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685년 최초로 이루어진 뒤 지금까지 줄곧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내궁 본전

특별히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저 토리이 너머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내궁에서는 아마테라스와 함께 삼종신기 중 하나, 거울에 해당하는 야타노카가미(八咫鏡)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

삼종신기는 천황가의 조상신이 아마테라스로부터 건네받았다는 거울과 검, 방울을 뜻하는데

그 종교적 권위가 엄청나 천황조차도 직접 친견해 보고 만질 수 없다고 알려져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전승 대로라면 위 사진 토리이 너머에 있는 본전에 야타노카가미가 봉안되어 있을 터이다.

 

국부 「삼종의 신기 거울」

야타노카가미는 동방 세계관에서는 영야초에서 케이네가 사용하는 스펠로 등장한다.

모든 역사를 다루는 케이네와 잘 어울리는 스펠카드.

외궁 경내

내궁 참배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집어타 외궁으로 향했다.

외궁은 내궁보다는 크기가 작다. 권위는 비슷하다지만 역시 아마테라스 쪽이 대우를 받는듯하다.

외궁의 말사 중 하나인 카제노미야(風宮)

식년천궁의 영향으로 건축 양식 자체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정작 건물은 깨끗한게 또 볼거리다.

 

내궁은 워낙 사람이 많아 시끌시끌했는데 외궁쪽으로 오니 고즈넉하니 좋다.

외궁의 말사 중 하나인 츠키요미노미야(月夜見宮)

이세 신궁은 상징성도 규모도 큰 신사다보니 수많은 신관들이 거주하며 경내를 관리하고 의식을 올렸는데,

외궁의 신관직 중에 오오모노이미(大物忌)라는 중직이 있었다.

이세 신궁의 신관과 동녀

오오모노이미는 모두 결혼하지 않은 여성(여자아이)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아스카 시대에는 유력 호족 모노노베 가문이 관여하기도 한 직책이다.

그 업무는 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제삿밥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성동녀「오오모노이미 정찬」

모노노베의 피를 이은 후토가 신령묘 최종스펠로 오오모노이미가 바치는 정찬을 꺼내드는 연유가 바로 이것이다.

후토의 이름 모티브가 된 후츠히메도 이소노카미 신궁의 신관이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후토의 본직은 신관이었을 수도?

제사에서 쓰이는 술통들

한편, 게이오 3년(1867년) 8월 나고야 근교에서는 하늘에서 이세 신궁의 부적이 흩날리며 떨어졌다는 뜬소문이 돌았다.

이를 듣고 사람들은 '신의 부적이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이건 틀림없이 경사의 징조다!'라고 좋아하며 크게 흥분하여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자는 남장을 하고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웃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

소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든) 좋지 아니한가'라는 뜻인 '에에쟈나이카 ええじゃないか'라는 말에 가락을 붙여 부르며 온 지역을 행진했다고 한다.

처음 소동이 시작된 나고야의 경우 7일동안 일상생활이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점차 일본 전국으로 전파되어 칸사이나 시코쿠까지 퍼졌다고.

 

당시 모습을 재현한 영화 단락, 이마무라 쇼헤이 - 에에쟈나이카(1981)

이 소동은 후에 '에에쟈나이카'라 불리는데 그 목적은 분명치 않으나, 하늘에서 이세 신궁의 부적이 떨어진 신비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 이동이 제한된 수많은 서민들이 고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에에쟈나이카를 부르며 이세 신궁을 참배하러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심기루의 프롤로그에 언급되는 '좋지 아니한가!'의 원문은 에에쟈나이카로, 이세 신궁을 그 배경에 두고 있다.

억압받던 사람들의 해방과 그 사이를 파고드는 종교 전쟁의 대비가 얄궂고도 재미있다.

그날 저녁 나고야로 올라가 먹은 B급 구루메, 앙카케 파스타

나고야는 관광지가 많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나고야 여행을 가게 된다면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이세와 마쓰자카를 다녀와보는건 어떨까?

역사 문화 체험과 함께 동방 성지순례도 겸사겸사 가능한 좋은 선택인듯하다.

 

모토오리 노리나가 옛 저택

 

주소

三重県松阪市殿町1536-6

미에현 마츠사카시 토노마치 1536-6

 

가는 방법

긴테츠 or JR 마츠사카역 하차, 도보 15분

 

 

 

이세 신궁

 

내궁 가는 방법

긴테츠 이스즈가와역 or JR 이세시역 하차 뒤 버스 이용

이스즈가와역에서 버스 이동 7분, 이세시역에서 버스 이동 22분 소요

 

외궁 가는 방법

 

긴테츠 우지야마다역 or JR 이세시역 하차 뒤 도보 10분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