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끝나질 않는다. 동지도 지나고 절기는 새해로 접어드는데, 삼도천을 건너는 혼령들의 행렬은 해의 끝도 모르나보다. 나도 이제 뱃사공 연수교육을 받고 삼도천에 배치된 지 어언 10개월, 짬이 찰 만큼 찼는데 이렇게 귀객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아니, 지상에서 줄초상이라도 났어? 전염병이라도 돌았나? 무슨 일로 이렇게 한꺼번에 건너는 거야?”

 

  뱃전에서 거룻배 노를 힘차게 저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농을 던졌다. 푸르스름하고 가냘픈, 자그마하고 힘없는 혼령들은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뱃마루 위를 굼실거린다. 멀미를 하는 혼령, 넘실대는 강물을 보며 신나하는 혼령, 갑자기 흐느끼는 혼령…… 이것들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손님들이다. 오늘만 이런 배가 벌써 여섯 척 째, 농땡이 피울 새도 없이 초과근무를 찍게 생겼다. 피안화가 쓸데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키님 들어보세요, 오늘이 이브라 일찍 끝내고 와서 분위기 좋게 술이라도 한 잔 걸치려고 했는데, 아니 무슨 날인지 혼령들이 빽빽해서 내내 콩나물시루였다니까요. 진짜 내가 억울해서 못 살아. 아~ 피곤하니까 내일은 적당히 일해야지…….

 

  퇴근시간을 한참 지난 늦은 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염마님도 일을 끝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계셨다. 장난스럽게 늘 하던 엄살을 부렸는데, 오늘은 매일 보던 시키님 표정이 사뭇 더 진지하다.

 

  “오늘 혼령이 많은 건 당연한 거잖아요.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건 알고 있잖아요?”

 

  염마님이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또 기나긴 훈계가 시작되려 한다. 성탄절과 혼령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지? 궁금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 생일인 크리스마스랑 혼령이 무슨 상관이래요? 기쁜 날이기만 한데.”

 

  내가 진짜 경위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는지, 염마님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응접용 의자에 앉는다. 탁자 위에 놓인 염주를 집어 들어 굴리며, 불경을 읊듯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복된 예수님이 태어나고 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달갑지 않게 보았던 이스라엘의 헤로데라는 왕이 있었어요. 헤로데는, 아기 예수님이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는지 알아내서, 그 도시에 있는 아기들을 전부 다 죽여 버렸어요. 예수님은 살아남았지만, 불행하게도 죄 없는 아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지요.”

 

  담담히 이야기하던 염마님 손가락에 걸린 구슬들을 본다. 자세히 보니, 오늘은 염주가 아니라 묵주다.

 

  “하지만 현세의 사람들은 학살당한 아기들을 망각하고, 복된 예수님의 탄생도 반쯤 잊어버리고, 크리스마스를 단순히 기쁜 축일로만 여기게 되었어요. 몇 년 전부터였을까, 잊힌 아기들은 환상향으로 흘러들어, 매년 성탄전야 삼도천을 건너지요.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들을……. 시비곡칙청 염마들은 그 아기들을 천도시키기 위한 기도를 하루 종일 외지요. 우리는, 아기를 돌보는 지장보살이잖아요.”

 

  그 순간 보살님 뒤로 작지만 분명한 광배가 떠올랐다. 슬픈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염마님은, 종교를 초월한 자비 그 자체였다.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염마님. 제가 뭘 잘 모르고 엄살을…….

 

  “몰랐던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오늘밤만 지나면 기쁜 성탄절이고, 또 새해가 밝을 테니, 그때는 응석도 받아줄게요. 내일 또 봐요, 코마치.”

 

 

  집무실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 죽은 사람 수만큼 핀다는 피안화가 오늘따라 무성하다.

  염주인지 묵주인지, 구슬 하나를 굴릴 때마다 성불한 혼꽃은 푸르스름한 연기로 승천한다.

  파란 성탄전야가 피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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