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레이, 오리이역 성지순례기 - 초핫의 잡동사니들 (tistory.com)
위 글에서 이어진다.
소녀 레이 성지순례를 마치고 방파제에 걸터앉아 어디로 갈지, 또 어디서 숙박할지 고민을 했다.
이즈모 대사, 이와미 은광, 아니면 하마다 여행...
이즈모는 일본에 살다보면 언젠가 갈 것 같았고
이와미 은광과 하마다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걱정되어서
산인에 온 김에 좀 발품을 팔아 코이즈미 야쿠모의 문학 기념관에 가보기로 했다.
하마다에 잠시 내려 1시간이 넘게 남은 특급열차를 기다린다. 현청소재지 마츠에는 150km가량 떨어져있다.
이날 심야버스와 히로시마 도보여행, 장대비로 완전히 지쳐있어 역 구내 벤치에 뻗어 쉬었다.
저녁 사진을 찍는걸 잊을 정도로 기진맥진.. 신지호의 명물인 바지락 된장국과 가정식 백반을 먹었다.
호텔에 체크인한 뒤 샤워하고 밥만 먹은 뒤 바로 침대로, 오후 8시쯤 잠들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나보니 시각은 4시 반
이제야 창밖을 내다보니 신지호와 마츠에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좀이 쑤시니 바로 야쿠모가 매료되었던 마츠에 새벽 산책에 나선다.
마츠에는 신지호(宍道湖)라는 호수와 나카우미(中海)라는 석호를 끼고 있는 도시다.
커다란 호수 사이에 도시가 있고, 그 사이에 강이 흐르는 이쁜 도시
마츠에가 위치한 시마네현은 대한민국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 주장중인 지자체다.
정작 마츠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적잖이 찾는 도시라, 주민들은 관계 경색을 걱정해 떨떠름해 한다는 말도.
한국 인터넷상의 방문기를 읽다보니 이 자료관이 관광객들이 지날 일 없는 동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투로 쓰여있는 것도 있던데, 일반적인 한국인 관광객들의 동선은 잘 모르겠으나, 마츠에성에서 지근거리에 있어 접근하기 편한 곳에 있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10여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성에서 그리 멀지 않아 마츠에 여행 중에 들르기에 좋다.
일본어로는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小泉八雲記念館
영어로는 HEARN MEMORIAL MUSEUM이라 표기되고 있는게 실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념관 옆에는 코이즈미 야쿠모, 즉 라프카디오 헌이 마츠에에 살 때 기거하던 생가가 그대로 남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쉽지만 전시실 내부 전시물은 완전 촬영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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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은 코이즈미 야쿠모의 생애와 함께, 그가 수많은 인문적 환경을 넘나들며 겪었던 고뇌와 경험, 그것이 그의 문학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하,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홈페이지의 '코이즈미 야쿠모의 생애'를 번역해 정리해본다.
패트릭 라프카디오 헌(Patrick Lafcadio Hearn), 즉 코이즈미 야쿠모는 1850년 6월 27일 그리스 서부의 레프카다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찰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군의관, 어머니 로자는 그리스 키실라 섬 주민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당시 독립국이 아니었으므로, 헌은 영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살 때에 아일랜드로 돌아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은 뒤, 종교와 교육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16살 때, 친구와 놀던 중 왼쪽 눈을 실명. 19살 때, 부모 대신 야쿠모를 양육하고 있던 숙모가 파산하여,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최빈곤층의 생활을 체험한 뒤, 신시내티에서 저널리스트로서 문필을 인정받습니다. 그 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섬 등으로 거처를 옮기며, 문화의 다양성에 매료되며 왕성한 취재 집필 활동을 이어갑니다.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던 때에 엑스포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고, 뉴욕에서 읽은 <고사기> 영역판에 영향을 받아 도일을 결심하여 1890년 4월 일본 땅을 밟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마츠에에 있던 시마네 심상중학교에 부임하여 영어교사 교편을 잡습니다. 그 뒤 구마모토 제5고등중학교, 고베 크로니클사 근무를 거쳐, 1896년 9월부터 제국대학 문학과 대학강사로 영문학을 가르칩니다. 1903년에 제국대학에서 해고되어, 후임을 나츠메 소세키에게 양보한 뒤 와세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일본 생활 중, 1896년 마츠에에서 사족의 딸이었던 코이즈미 세츠와 정식으로 결혼하여 일본에 귀화합니다. 슬하에 3남 1녀. 작가로서는 번역・기행문・구비문학 장르를 중심으로 약 30편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1904년 9월 24일 심장 발작으로 향년 54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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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의 전시는 구마모토의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했다.
장남 카즈오(一雄)의 이름은 라프'카디오'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깊었다.
미들네임 라프카디오는 그의 출생지인 이오니아해의 레프카다 섬에서 유래했으니, 정말 수많은 바다를 건너며 생긴 짙은 정체성..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코이즈미 야쿠모에 대한 일본인(세계?)의 평가가 '일본 민속을 몸소 접하고 정리하고 작품에 담아낸 외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일본 모처에서의 경험은 그의 저작 OO에 반영되었다'
'이즈모 신화를 통해 헌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탐닉하였다' 등의 설명문을 보니
기념관은 코이즈미 야쿠모를 통해 외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 철학, 19세기의 정신적 도래인 등을 도식화 하려는듯했다.
전시물 내에서 줄곧 그를 귀화 전 이름인 '헌'으로 부르는 것이 특히 그러했다.
사유가 어떻든 라프카디오 헌ー코이즈미 야쿠모를 지금 일본의 일반대중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ZUN이 환상향과 근미래 일본의 외국인 관찰자인 마에리베리 한을 창작하며 라프카디오를 떠올린 이유도 짐작이 간다.
아일랜드 그리스 혼혈, 프랑스와 영국, 정통적 종교 교육과 반항심, 미국 이민, 동부와 서부, 카리브의 섬들, 극동의 땅..
수많은 토지를 지나고 관찰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코이즈미 야쿠모 옛집 (小泉八雲旧居)
괴담『유키온나(설녀)』, 『귀 없는 호이치』등으로 익숙한 메이지의 문호 코이즈미 야쿠모. 영어 교사로 마츠에에 부임하여, 세츠 부인과 결혼한 뒤 이전부터 염원으로 갖고있던「무가 저택」에서의 삶을 이루기 위해 이 저택을 빌려 생활했습니다. 당시 이 저택은 구 마츠에 번사 네기시가의 소유로, 당주 네기시 타테오(根岸干夫)는 현 이즈모시의 군장으로 임명받아 임지에 나가있어 우연히 비어 있었습니다. 방을 둘러싼 정원은 타테오의 선대 네기시 코이시가 조성한 것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의 산수를 표현한 정원은, 코이시의 명저『낯선 일본의 모습 知られぬ日本の面影』에서도 그 매력이 듬뿍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 여러분도 부디 마츠에에 거주하던 헌 선생님의 세계를 마음 가닿는 대로 느껴주세요.
옛집 내부는 기념관과 달리 촬영이 가능하다.
주소
島根県松江市奥谷町322
시마네현 마츠에시 오쿠타니쵸 322
가는 방법
JR 마츠에역 하차
구룻토 마츠에 레이크라인 버스 탑승,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앞 하차
마츠에 시영버스 탑승, 시오미나와테(塩見縄手) 하차, 도보 5분
https://www.hearn-museum-matsue.jp/index.html
기념관 홈페이지
2023년 8월 8일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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