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에 다녀온 와카야마 여행때 들른 아와시마 신사(淡嶋神社)
아침 일찍 출발해 와카야마시역에 도착, 난카이 카다선으로 환승한다.
난카이 카다선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랩핑 열차로 운영되고 있었다.
내장이 꽤 이쁜데 특히 물고기, 음표, 열쇠 모양으로 만든 손잡이가 귀엽다.
종점 카다역 도착, 아와시마 신사는 여기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카다(加太)는 태평양에서 오사카-교토로 향하는 뱃길인 기이 수도로 돌출되어있는 해상 교통의 거점이자 요충지다.
이때문에 옛날부터 사람이 거주하던 유서깊은 어촌 마을.
카다 옆에 떠있는 섬, 토모가시마(友が島)는 작년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서머타임 랜더'의 성지라서 일약 유명 관광지에 등극하기도.
오늘도 조용하고 푸른 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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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와 아와시마 신사는 6년 전 자전거 여행때도 들른 적이 있다.
관심 있으시면 이전 여행기도 읽어주십사..
아와시마 신사는 200년경부터 사서에 기록된 유서깊은 신사다. (그 신빙성은 차치해두고라도)
일본서기에 따르면,
삼한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던 진구 황후가 세토내해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해 하늘에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 오오쿠니누시와 스쿠나히코나가 "곡물 한 가마니를 바다에 던지고 그를 따라 운항하라"라는 계시를 내리고,
계시를 따라갔더니 카다 옆의 토모가시마에 무사히 닿아 보물들을 섬에서 봉헌했다는 신화가 남아있다.
이후 진구 황후의 손자 닌토쿠 천황이 토모가시마에 사냥을 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섬은 협소해 신의 은덕을 찬양하기 어려우므로, 사당을 섬 반대편 곶 카다로 옮기고 신사를 세운 것이 아와시마 신사의 건립 내력이라고 한다.
섬의 주 제신인 스쿠나히코나는 동방에 등장하는 스쿠나 신묘마루의 모티브.
아와시마 신사에서는 아와시마노카미(淡島神), 말 그대로 '아와시마의 신'이라는 신도 함께 모시는데, 이 신이 독특하다.
아와시마신은 민간신앙에서 발원된 신이기 때문에,
아와시마신을 모시던 많은 신사는 메이지 유신의 신불분리령 때에 그 정체를 (아와시마 신사에서 모시는) 스쿠나히코나로 둔갑시켜 모셨다고 한다.
아와시마신은 부인병 치료를 위시로, 무탈한 출산, 아이 점지, 바느질 숙달, 인형 공양 등
전근대의 여성과 관련된 수많은 것들에 영험이 있는 신으로 여겨졌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을 지켜주는 신'이다.
에도시대에는 아와시마 간닌(淡島願人, 아와시마에게 기원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이
아와시마신의 인형을 봉납한 제단을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아와시마 신앙을 널리 알려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아와시마 신사는 일본 전역에 총 1000여 곳이 있다고 알려져있으며, 카다의 아와시마 신사는 그 신사들의 총본산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내력 때문에, 아와시마 신사는 히나 인형을 바치는 신사로 가장 유명하다.
일본의 전통 행사 중 하나인 히나마츠리(雛祭り)는 부모가 딸의 건강과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는 축제일이다.
3월 3일이 되면 어린 딸이 있는 가정에서는 계단과 같은 제단에 붉은 천을 깔고 히나 인형(雛人形)이라는 사람 모형과 복숭아꽃대를 집안에 장식한다.
삼짇날이 끝나자마자 이 인형들은 전부 치워버리는데, 늦게 치우면 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히나 인형은 신령들이 깃드는 인형(形代)으로, 딸에게 닥쳐올 재난이나 병과 같은 재액들을 히나 인형에 옮기는 민간행사가 히나마츠리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딸의 재액이 담긴 인형은 배에 태워 신의 나라로 돌아가라며 강이나 바다에 띄워보내는데, 이를 히나나가시(雛流し)라 한다.
기왕이면 아와시마 신앙의 총본산에서 딸의 재액을 떠나보내려는 믿음 때문일까,
카다의 아와시마 신사는 일본 최대 규모의 히나나가시가 이루어지는 신사다.
아와시마 신사는 히나마츠리가 3월 3일이 된 유래를
토모가시마에서 카다로 천궁을 한 날짜가 닌토쿠 5년 3월 3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히나 ヒナ'의 어원은 제신 '스쿠나히코나 スクナヒコナ'가 간략화된 것이라고도 해석한다.
이러니저러니 히나 인형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신사다.
본전 앞 마당에는 히나 인형을 봉납하는 사람들을 위한 바구니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놓고 찍을 수는 없었지만, 아와시마 신사는 다른 신사들보다 유독 여성 참배객의 비율이 높아보였다.
가족이나 부부 단위로 놀러 온 젊은 참배객들도 많이 보였는데, 아마도 자녀 계획과 관련된 기도를 드리러 온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아와시마 신사는 천 년이 넘는 세월을 히나 인형과 함께 보내왔다.
신사에서 경내에 장식하고 있는 인형들만 해도 2만 개가 넘으며, 따로 소장하다 흘러보내는 인형까지 합치면 수십만은 된다는 말이 있다.
재액을 담은 인형들은 그렇게 묵묵히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며, 다음 3월 3일을 묵묵히 기다린다.
재액이 담긴 히나 인형을 수집하는 액신, 카기야마 히나는 히나마츠리와 히나나가시의 풍습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히나의 발상지이자 최대 성지, 히나 신앙이 만들어지고 또 소원을 담아 바다로 떠내려가는 신사.
액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타인의 접근을 꺼리지만 누구보다도 따스한 소망을 담은, 히나의 속성을 엿보기에 좋은 곳이다.
인형을 모시는 신사라는 이유 때문에, 아와시마 신사에는 히나 인형 이외의 안 쓰게 된 인형들도 잔뜩 봉납되어 있었다.
여성들에게 오랜 기간 신앙받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리즈카(針塚).
직역하자면 바늘 무덤이다.
2월 8일, 또는 12월 8일에 이루어지는 바늘 공양 때에는,
부러지거나 녹슬어서 못 쓰게된 바늘을 두부나 곤약 같은 부드러운 것에 꽂아 바다에 흘려보낸다.
신사 뒤편의 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는 말사는, 내부 근접촬영이 단단히 금지되어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부인병과 출산, 임신과 관련한 여성 특유의 생리와 관련된 병을 쾌유시켜주는 믿음이 있어
공양하러 온 여성 본인이 입고 있던 속옷을 봉납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사 사무소에서는 갑자기 속옷을 봉납하게 된 여성을 위해 속옷을 판매하기도 한다;;
'속옷 봉납은 나무 문을 열어 안에 직접 넣어주세요'
라고 쓰여있는 안내문
임신, 출산, 부인병, 부부원만, 가내안전, 쾌유 등의 효험이 있다고 붙어있는 안내문
살짝 들여다본 말사 내부에는 남근 모양의 조각들과 함께, 비닐에 담긴 여성용 속옷이 잔뜩 봉납되어 있다.
약간은 특이한 광경이기도 하고, 아와시마 신앙이 얼마나 깊이 숭상되는지 알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신사를 한바퀴 돌고 본전 앞으로 돌아오니, 10분 사이에 히나 인형이 잔뜩 봉납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히나 인형이 아닌 다른 인형들에 간소하게 재액을 옮기는 일도 많아져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공양되어 모여드는 신사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2023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히나 인형의 전통과 아와시마 신앙을 체험하러, 아와시마 신사에 가보는건 어떨까?
주소
和歌山県和歌山市加太118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카다118
가는 방법
난카이 전기철도 카다선 카다역 하차, 도보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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