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동안 입국 금지 - 비자 문제로 스트레스받아 진짜 머리까지 빠지길래
기분 전환으로 당일치기 짠내투어 성지순례를 다녀왔음
출발지는 오사카, 날씨는 쾌청
JR 나라 오지역에서 내려 시기산(신귀산 信貴山)행 버스를 탄다
시기대교 (信貴大橋)라는 곳에서 내리면 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산속 허허벌판이다
여튼 정류장에서 좀만 걸어가다보면 이렇게 큰 토리이가 나온다.
여기부터는 쵸고손시지(朝護孫子寺) 경내이다.
시기산 쵸고손시지 전도
거의 산 한쪽 면 전체를 쵸고손시지가 점하고있다.
전승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쇼토쿠 태자가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토벌하러 가다 이 산에 머물렀다.
태자가 전승 기원 기도를 올리고 있던 중, 하늘에서 비사문천왕이 출현해 필승의 비법을 알려주었다.
그날은 우연찮게도 인(寅 = 호랑이)년, 인일, 인시였다고 한다.
태자는 비사문천의 가호로 승리하여, 본인이 직접 비사문천의 상을 조각해 시기산에 가람을 창건하고
믿어야 할 귀한 산이라는 뜻으로 산의 이름을 '신귀산 信貴山'이라 하였다.
이후, 시기산의 비사문천왕은 호랑이 신으로서 신앙받고 있다고 한다.
시기산에 나타난 비사문천은 일본 최초의 비사문천이라고 하여, 비사문천 신앙이 매우 융성하였다.
그래서 토리이를 지나면 이윽고 이렇게 커다란 호랑이 상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복호랑이 상
호랑이는 쵸고손시지의 상징이며, 절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렇게 경내에 들여놓고 참배하기도 하며
호랑이 모자상을 지장보살상 형태로 조각해놓은 곳도 있다.
비사문천은 돈과 재보를 가져다준다는 신이므로, 아예 지폐를 물고있는 모양의 상도 경내에 있다.
지폐에는 동전을 꽂을 수 있는 틈이 있어 재미있음
당연하게도 호랑이 비사문천은 토라마루 쇼의 모티브이다.
후술하겠지만 쵸고손시지는 성련선의 모델이 되는 절로, 뱌쿠렌이 신앙하는 비사문천 또한 이곳에서 따온 것이다.
쇼토쿠 태자가 이곳에서 비사문천을 만났다는 전승에 따라 쇼토쿠 태자의 기마상도 조각되어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토요사토미미노 미코, 쿠로코마 사키의 모티브
코로나의 유행 탓에 참배객이 거의 없어 조용한 분위기였다.
덕분에 산사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시기산은 태자 이래 비사문천의 신앙처로 널리 숭상받다가, 10세기에 다시 중흥된다.
다이고 천황(885~930)이 병환으로 쓰러졌을 때
칙명에 의해 시기산에서 수도하던 묘렌(命蓮)이라는 스님이 하늘에 치유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천황의 병이 씻은듯이 나았다고 한다.
천황은 묘렌과 비사문천에 감복해 조묘안온(朝廟安穏)・수호국토(守護国土)・자손장구(子孫長久)의 칙호를 하사해
'쵸고손시지 朝護孫子寺'라는 사호를 내린다.
이후 쵸고손시지는 묘렌 스님에 의해 크게 세를 넓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 묘렌에 얽힌 이야기는 시기산엔기 에마키(信貴山縁起絵巻, 신귀산연기 그림 두루마기)라는 국보로 전해지는데,
이야기의 내용 중에는 묘렌의 누이 비구니가 등장하고, 그 누이 비구니는 성련선 히지리 뱌쿠렌의 모티브이다.
성련선의 무대인 명련사 또한 묘렌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에마키 속 쵸고손시지에 얽힌 이야기 중에서는 공발호법(空鉢護法)이라는게 있는데
해당 이야기의 무대는 쵸고손시지에서 약 20분을 등산해야 나오는 공발호법당이다.
등산로는 완만하지만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어 올라가기 힘들었다.
공발호법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묘렌 법사는 쵸고손시지에서 도를 닦으며, 하산하지 않고 법력으로 바리때(그릇)을 날려 부자들에게서 시주를 얻었다.
어느날, 야마자키라는 이름의 부자가 '저 바리때가 문제다!' 라며, 곳간에다 바리때를 넣고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자, 곳간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지면에서 떨어지는게 아닌가!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리자, 곳간의 문이 스르르 열려 바리때가 튀어나오더니
제 위에 커다란 곳간을 얹고는 시기산으로 날아가버렸다.
부자와 하인들은 날아가는 곳간을 뒤쫓아가고, 이윽고 곳간은 쵸고손시지의 마당에 쿵 하고 떨어졌다.
부자는 묘렌을 보고
'어쩌다보니까, 바리때를 곳간 안에 놓아두고 깜빡 문을 잠가버렸우, 그랬더니 갑자기 곳간이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창고를 돌려주실 수 없으신지요' 라고 이야기했다.
묘렌 스님은, '제 스스로 날아온 곳간은 돌려드리기 어려우나, 곳간 안에 든 곡식은 돌려드리죠' 라고 하여서
부자가 '일천 석이나 되는 쌀가마를 대체 어떻게 옮긴답니까?' 라 물으니
스님이 '뭐, 쌀가마를 저 바리때 위에 올려보시죠' 라고 답했다고.
그래서 하인이 쌀가마를 들어 바리때에 올려보았더니
또 그 많은 쌀가마들이 저절로 날아가 부자의 집 마당에 떨어졌다고.
공발호법 이야기 속에서 묘렌이 바리때를 법력으로 날린 곳이 바로 공발호법당으로
지금까지도 쵸고손시지의 주요 불당이다.
공발호법당으로 올라갈때 분위기가 진짜 환상적이었는데
멀리서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울려퍼지고, 가까이서는 산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날씨도 맑던 것이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우박으로 바뀌었다.
토리이 하나 하나를 지날 때마다 날씨와 풍경은 시시각각 바뀌고, 환상향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맑은 경치를 보지 못한건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영력을 느꼈다.
공발호법당에서 바라본 풍경
이 풍경을 바라보며 묘렌은 바리때를 날렸을 것이다.
궂은 눈이 내리는 공발호법당 모습
공발호법당 주위에는 곳곳에 '공발호법'이라는 현판을 단 토리이가 있어 이색적이다.
당 내부에는 이런 특이한 형태의 조각이 있는데, 아마 스님의 바리때를 표현한게 아닐지?
공발호법 이야기는 모두가 사랑하는 성련선 6면 최종스펠의 모델이 되었다.
감정의 마천루가 뇌내 자동재생되는 장소였다 ㄹㅇ..
산을 내려오니 다행히 또 날씨가 개어서 천천히 경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경내에는 비사문천왕을 상징하는 깃발이 줄지어있는데, 이는 심비록계 격투게임 명련사 스테이지에서 차용되었다.
비사문천 깃발 원경
정원도 잘 꾸며져있고.. 근데 진짜 관광객은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 몇명 빼고는 단 한 명도 못 봤다.
한국의 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일본에서 보니 반가웠다.
큰 산을 끼고있어 일본의 여느 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이렇게 큰 절인데 스님 몇 분 빼고 사람이 한명도 없는게 말이 되나, 이게 다 코로나 때문..
일본에는 평지형 가람배치가 많고 산사는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완연한 산사 느낌이 나서 너무 좋았다.
나라로 여행간다면 성련선의 최대 성지이자 명련사의 모티브, 쵸고손시지에 들러보는건 어떨까?
가는 방법
JR & 긴테츠 오지역 하차, 나라버스 시기산행 탑승 후 시기대교 하차 후 도보
긴테츠 시기산구치역 하차, 케이블 타고 타카야스야마역 하차, 긴테츠버스 시기산행 탑승 후 시기산문 하차 후 도보
'동방 성지순례 > 서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와후네 신사 (磐船神社) (1) | 2020.05.10 |
---|---|
아스카 지방의 성지들 (明日香・飛鳥) (0) | 2020.03.30 |
하타노 카와카츠의 묘 (伝・秦河勝の墓) (0) | 2019.12.01 |
간고지 (元興寺) (0) | 2019.08.23 |
히노쿠마 신궁・쿠니카카스 신궁 (日前神宮・國懸神宮) (0) | 2019.08.11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