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카라토 어시장 앞

그 유명한 시모노세키(下関)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 페리를 한번쯤 들어본 적은 있을테다.

시모노세키는 혼슈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로, 해협 건너 키타큐슈와 마주보고있다.

 

 

시모노세키 항구, 혼슈와 큐슈를 잇는 칸몬교가 눈에 띈다

목 좋은 항구들이 으레 그렇듯, 시모노세키에도 온갖 역사가 녹아들어있다.

겐페이 전쟁의 마지막 전장이었으며,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가 칼싸움을 벌인 곳이기도 했고, 조선 통신사가 오가던 길목이기도 했다.

또, 성장하던 근대 일본에서 대륙을 향한 돛을 올리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항지로도 기능했다.

 

그때문에 시모노세키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정말 다양한 유적들, 관광지가 남아있다.

 

어시장 한 가운데에 서있는 복어상

시모노세키를 논하는 데에 빠트릴 수 없는게 바로 이 복어다.

복어는 일본에서 오랜기간 그 독성으로 인해 식용 자체가 금지된 어종이었다.

 

허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일대에서는 암암리에 향토 요리로 복어를 먹는 자들이 계속 있어왔고,

야마구치현(쵸슈번 長州藩)을 기반으로 성장한 유신 지사들이 에도에서도 복어를 찾기 시작하자 기어이 금어령이 해제된다.

 

그 금어령을 해제한 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근대정치인 이토 히로부미다.

 

춘범루

익숙한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후, 이토 히로부미는 청나라의 노련한 외교관 이홍장을 본인의 고향 시모노세키의 복어요리집으로 부른다.

그 복어요리집 이름이 춘범루(春帆楼)였는데, 이토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단골 가게라고 한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당시 그림

이토는 이홍장에게 복어 요리를 대접하며, 청일전쟁을 끝내는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완전 자주국이 되어 청의 간섭이 사라졌고, 일본은 한반도를 집어삼킬 준비를 마친다.

그뿐만이 아니라, 청은 요동반도와 대만, 펑후제도를 일본에게 할양해야 했으며 수억 냥의 배상금을 물어내야 했다.

 

왼쪽이 이토, 오른쪽이 이홍장

독이 든 요리의 대명사, 복어 요리를 패배한 외교관에게 대접한 이토. 그리고 시모노세키 조약.

그의 잔인하고도 날카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포인트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기념관

이미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춘범루 옆에는 이렇게 작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기념관이 서있어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내가 방문했을땐 번자체 팜플렛을 들고있는 것으로 보아 대만이나 홍콩에서 왔음직한 젊은 관광객 2명이 이홍장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 한국에서 온 나와 대만 혹은 홍콩에서 왔을 두 사람이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신기했다. 역사는 알수록 재미있고 고찰할수록 깊어진다.

 

그 두 사람은 이홍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춘범루 별관 복어 점심 정식, 1500엔

그리고 진짜 춘범루 복어는 맛있으니까 꼭 먹어보자 ㅎㅎ

본점은 정말 복어에 미치지 않고서야 못 먹을 값이지만, 시내 다이마루 백화점의 별관에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중이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랑 이홍장이 먹던 그 음식을 먹어본다니! 하는 느낌이었다. 겁나게 맛있다.

 

그렇게 시모노세키 조약 기념관을 나오면 이런 팻말이 하나 서있다.

 

이홍장이 저격을 피하기 위해 이용했다는 자그마한 샛길 이홍장길(李鴻章道)도 궁금하지만,

왼쪽으로 꺾으면 아카마 신궁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란다. 지름길로 가자. 1분이면 도착한다.

 

아카마 신궁 스이텐몬(水天門)

아카마 신궁은 859년 창건된 유서 깊은 신사로, 많은 전설들이 잠들어있다.

한국어로 읽으면 수천문인 스이텐몬이 마스코트 격 건물인데, 다름아닌 용궁의 대궐문을 본따 만든 것이란다.

 

아카마 신궁 경내

이 아카마 신궁에는 겐페이 전쟁(源平合戦)과 안토쿠 천황(安徳天皇)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겐씨(源氏, 원씨)와 헤이씨(平氏, 평씨)는 일본 황실을 섬기던 유력 무사 가문으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12세기에 겐페이 내전이 벌어진다.

겐씨는 '미나모토', 헤이씨는 '타이라'라고도 부르며, 군담문학에서 헤이씨는 곧잘 '헤이케 平家'라 불린다.

 

겐페이 전쟁 당시 8세였던 안토쿠 천황

겐씨의 수장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타이라씨를 공격하자, 타이라씨는 어린 안토쿠 천황을 데리고 싸움에 임한다.

안토쿠 천황이 타이라의 피를 잇고 있긴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질과 다름없었다.

 

악전을 반복하던 타이라씨는 결국 시모노세키까지 밀리고, 시모노세키 앞바다 단노우라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단노우라 옛 전장을 알리는 비석, 칸몬교 서쪽에 있다.

단노우라(壇ノ浦)에서 벌어진 해전은 치열했다. 수전에 능했던 헤이케의 무사들은 처음에는 우세를 점쳤고, 실제 전황도 그러했다. 타이라의 베는 겐씨를 저 멀리로 밀어내며 그들의 눈앞에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듯했다.

하지만 칸몬 해협은 폭이 아주 좁고 물살이 빨랐다. 조류가 급격히 바뀌고, 용맹한 헤이케 무사들은 쓸려가는 파도 위에서 허망하게 전멸하고 만다.

 

아무것도 모른채 볼모로 붙잡혀있던 어린 안토쿠 천황도 마찬가지로 삼종신기를 안고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안토쿠 천황릉

안토쿠 천황의 시체는 건져져 근처 바닷가에 대충 가매장되었고, 후에 예를 갖춰 아카마 신궁 앞에 능이 조성된다.

영월 단종 장릉과 비슷한 신세일까? 이렇게 천황의 묘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모노세키에 위치하게 되었다.

 

수양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단종이 많은 야사를 낳았듯이, 시모노세키에도 헤이케와 안토쿠 천황을 기리는 많은 설화들이 생겨났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바로 귀 없는 호이치(耳無し芳一) 설화다.

 

귀 없는 호이치 공연 포스터

 

호이치는 비파를 연주하던 맹인 스님으로, 호이치가 헤이케의 원령들을 불러내 비파를 켜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어느 무사의 부탁으로 고귀한 인물의 저택에 비파를 연주하러 자주 가게 되는데

당연히 눈이 안 보이니 관객이 많은지 적은지도 알 길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열심히 비파를 켰다고 한다.

 

호이치가 가장 좋아하던 악곡은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인데, 이는 타이라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작품이다.

헤이케 무사들이 비장하게 싸우다 전멸하는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 부분에 이르자 관객들이 흐느껴 호이치도 내심 감동했다고 한다.

 

절의 주지 스님이 호이치가 매일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추궁했으나 호이치가 대답하지 않아 몰래 미행을 붙인다.

그러자 호이치는 장대비를 맞아가며, 어느 묘지 앞에서 비파를 타며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묘지는 타이라 가문 출신으로 천황이 되었으나 8세의 나이로 단노우라 전투에서 사망한 안토쿠 천황(安徳天皇)의 묘지였고,

밤마다 호이치를 불러낸 것은 타이라 가문의 원령들이었던 것이다.

 

주지스님은 호이치를 내버려두면 원령들이 호이치를 죽일 것이라고 여겼으나, 본인은 밤마다 법회가 있어 호이치를 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호이치의 온 몸에 반야심경을 필사해 호이치를 지키기로 하였다.

 

귀 없는 호이치 상상도

 

그날 밤, 전신에 경문을 쓴 호이치가 방에 혼자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다.

매일 그랬듯이 무사(헤이케의 원령)들이 호이치를 맞이하러 왔으나, 경문의 효험으로 원령은 호이치를 보지 못했다.

 

호이치가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원령은 당황하며 

「대답이 없군, 비파는 있지만 호이치는 없다니...」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원령은 호이치를 찾기 위해 절을 샅샅이 뒤지고, 주지스님이 깜빡하고 불경을 적지 않은 귀를 공중에서 발견해

「아아, 대답을 할 입이 사라졌던게로군. 비파 악사는 귀만 빼고 몸뚱아리는 전부 사라져버린게야. 그렇다면 위에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이 귀를 증거로 가져가야겠군」이라 말하며 귀를 잘라갔다고 한다.

 

그 뒤로 헤이케의 원령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호이치의 명성은 드높아졌다고 한다.


헤이케 무덤과 귀 없는 호이치당

이 섬뜩하고도 기이한 전설은 지금도 아카마 신궁에 서려있어 흥미를 돋운다.

경내 배전 왼편으로 향하면, 헤이케 무사들의 무덤과 귀 없는 호이치를 모신 당우가 있다.

 

호이치당

바로 이곳이 귀 없는 호이치를 모신 호이치당(芳一堂)

내부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어있는지, 비파소리와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읊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호이치 조각상

귀가 없는 조각상의 모습이 신기하고 분위기가 묘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헤이케의 원령을 달래주다 자신의 귀마저 희생한 비파 악사라...

 

호이치당 바로 옆에는 이렇게 헤이케의 이름없는 무사들을 모신 무덤이 한가득하다.

1000여년 전, 천황을 지키다 죽었을 이름없는 무사들. 그들에게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이렇게 재생산되고 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담장 너머로 안토쿠 천황릉도 있으니, 안토쿠 천황도 황천에서 호이치의 비파소리를 들으며 옷소매를 적셨을지도 모른다.

 

츠쿠모 자매 일러스트

 

원령 「귀 없는 호이치」
원령 「헤이케의 수많은 원령」

동방에서 비파 하면 우리 츠쿠모 자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노우라에서 죽어간 수많은 헤이케 원령들을 기리며, 벤벤은 비파를 켜며 호이치를 노래했나보다.

휘침성 벤벤의 2번스펠은 각각 원령 「귀 없는 호이치」, 원령 「헤이케의 수많은 원령」니까 말이다.

 

야츠하시랑 벤벤의 스펠카드는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따온게 많은데, 아카마 신궁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건 위의 두 스펠 정도일듯?

 

아카마 신궁에서 바라본 바다, 그리고 큐슈

시모노세키는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저력 있는 항구도시, 관광도시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면, 가깝고도 이국적인 도시 시모노세키로 떠나보는건 어떨까?

 

 

 

주소

山口県下関市阿弥陀寺町4−1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아미다이지정 4-1

 

가는 방법

JR 산요본선 시모노세키역 하차, 11번 or 12번 or 17번 버스 탑승 후 아카마진구마에 정류장 하차

시모노세키역에서 도보 35분정도 소요.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다른 포인트들도 많으니 나쁘지 않을 수도?

 

2020.01.31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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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큐슈지방 성지순례에 가깝지만, 그래도 혼슈니 서일본 카테고리에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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