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카케 언덕에서 내려와 도착한 스와대사 시모샤 하루미야

봄인지라 시모샤의 신은 아키미야(秋宮)가 아닌 하루미야(春宮)에 진좌해 있다

하루미야의 배전, 폐배전

 

익히 알려져있듯 스와대사는 본전이 따로 없고, 신사 뒤의 산을 신이 깃든 장소로 여겨 존경하며 머리를 숙인다.

카나코가 산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어느 참배객이 에마에 그려놓은 미케

모리야 신사뿐만아니라 스와대사에서도 간간히 이타에마를 볼 수 있다.

축제 기간을 맞이한 신사답게, 이쪽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미야를 나와 지근거리에 위치한 전시관, '온바시라관'으로 향한다.

7년에 한번, 천하의 대제라고 홍보중인 포스터

온바시라 마츠리에 쓰이는 각종 기물들

 

풍신록 익스에서 스와코가 탄막 대결은 신과 인간이 즐기는 '놀이'라고 했던 것처럼,

온바시라 마츠리 또한 표어대로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神人和楽) 행사

 

ZUN이 스와신앙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다

내부 영상관에서는 과거의 온바시라 기록을 편집해 상영해준다.

강렬한 판화로 그려진 키오토시

신사에 도착한 온바시라를 세울때 사용하는 기물을 전시중이다.

 

밧줄로 온바시라를 잡아당겨 세우는 모습, 타테온바시라(建御柱)

의외로 이게 키오토시보다 위험해서 최근 사망사고는 다 타테온바시라 중에 일어났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중에도 계속되었던 온바시라제

기념관 직원인 할아버지가 전쟁때는 사람이 없어서 어린애들까지 나와 온바시라를 세웠다고 하셨다.

 

기념관을 나와 시모스와정의 명물 중 하나인 만치의 석불(万治の石仏)을 보러 가는길

하루미야 옆을 흐르는 토가와(砥川)를 건넌다

그간 스와에 자주 왔지만 보지 못했던 만치의 석불

조형미를 신경쓰지 않고 만들어진게, 우리네 민불을 보는듯한 정겨움이 있다.

이 석불을 돌며 기도를 올리면 꼭 이루어진다고.. 

심야버스를 타고 와서 뙤약볕에 온바시라 마츠리 구경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아무래도 피곤해져

카미스와역 근처에 위치한 정식집 겸 이자카야로 바로 향했다.

고치소도코로 키무라(ごちそう処 きむら)

 

저번에 스와에 왔을 때도 찾았던 곳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다.

신슈 미소카츠동 + 지사케로 가볍게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진다

스와호 호반공원에서 괜히 잘 쉬고있는 오리들을 쫓아다니는 꼬꼬마들 ㅋㅋ

호숫가를 서성이는 사람들

워낙 피곤해서 스와호를 적당히 산책하다 체크인하고 일찍 잤다

다음날 아침, 버스 타고 스와시 박물관으로

스와신앙과 온바시라라는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온바시라 마츠리를 맞이해 대대적으로 온바시라 관련 전시를 하고 있었음

특별전 내부 전시물은 촬영 금지었는데 외부에 있던거라 찍어보았다, 타테온바시라 모형

 

상설 전시물중 하나인, 에도시대의 스와호 빙상 어업권 경계선을 그려둔 지도

스와시 박물관은 온바시라뿐만 아니라 스와 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알 수 있는 충실한 박물관이다.

군신들은 차고 넘치는데, 스와 신앙이 유독 전국시대 무장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이유가 궁금했는데

스와 대사는 조정에 의해 의식을 위한 사냥(수렵)이 허락된 신사로, 신관들이 무예를 숭상했기 때문이라고 특별전시 설명문에 써있었다.

 

혼미야 토리이

박물관 코앞에 있는 스와대사 카미샤 혼미야(諏訪大社上社本宮)

스와 대사는 네 곳이 있지만, 카미샤 혼미야가 그 중 으뜸가는 신사로 여겨진다

비단 온바시라 마츠리 시기가 아니더라도 참배객으로 북적이는 신사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정말 전국 각지에서 스와신사를 볼 수 있는데, 그 신사들을 총괄하는 총본산이다보니..

배전 앞, 엄마 손을 잡고 참배하러온 꼬마아이들

유서깊은 신사인지라, 경내의 많은 건물들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원래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배전 앞 마당

이날은 마츠리와 관련된 기도회가 열려 후원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다

오오누사(大麻)라는 신구를 흔드는 신관과 인사를 올리는 사람들

항상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엄숙한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혼미야 배전 앞이었는데,

이렇게 의식을 올리고 있는걸 보니까 색다른 느낌이었다.

불과 2년 전에 왔을 때에는 없었는데, 터치스크린 안내판이 생겨 사람들이 사용해보고 있었다

마츠리도 기계의 힘을 빌리고, 신사 경내에 전자 터치스크린이 설치되는 2022년..

경내에는 배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물들이 세워져있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신에게 올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카구라덴, 중요문화재 지정.

아쉽게도 현인신이 걸어다니던 회랑은 현재 보수공사중이다.

 

현인신은 스와 신앙에서 인간임과 동시에 신으로 숭배받던 존재다.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나 신토의 천황과 같은 존재

카구라덴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스와에도 현인신이 존재했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존재가 부정되어 지금은 계승이 끝나버렸다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져 환상들이한 사람이 동방의 사나에라는 설정.

신마를 모신 건물
신마뾰이

확실히 혼미야는 몇년이나 계속되는 보수공사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울 수 없었다.

올해 공사가 끝난다니 끝나면 또 가서 느긋하게 산책해야지

혼미야 서쪽 토리이

혼미야에서 마에미야쪽으로 가는 길, 멀리 야츠가타케가 선명히 보인다.

혼미야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모리야 신장관 사료관

스와 신화에서 토착신 모리야신은 패배했지만, 외래 집단에게 멸문지화를 당하진 않았고

오히려 외래신을 돕는 신장관 가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으며 스와 신앙을 이루는 축이 되었다.

전술했듯 스와씨족의 현인신은 메이지 유신으로 그 존재가 부정되어 계승이 끊겨버렸지만

모리야 신장관은 지금도 남아 스와 신앙의 역사와 전통을 증언하고 있다

모리야 가문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1500~1600년 전, 야마토 조정의 힘이 스와에 미치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부족의 족장으로서

모리야신이라 불리며 현재의 모리야산을 신의 산으로 숭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즈모에서 진공해온 타케미나카타에게 텐류가와 전투에서 패배하여

타케미나카타를 스와묘진으로 모시며 스스로는 필두 신관, 즉 신장관이 되었다.

 

중앙 세력에 패배하였지만 제사의 실권을 쥐고, 모리야산에 계시는 신의 목소리를 듣거나,

산에서 신을 강림시키는 힘은 모리야 씨족만이 메이지 유신 때까지 지녀왔다.

 

이 사료관은 그러한 모리야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문서 등의 역사 사료를 78대 모리야 사나에씨가

치노시의 기탁을 얻어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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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신장관 가문의 현대화와 사료관 건립에 이바지한 78대 모리야 사나에씨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동방 사나에의 이름 모티브

 

온토사이(御頭祭, 어두제)의 복원 자료

 

스와대사 제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마에미야에서 이루어지는 온토사이(현 토리노사이)다.

봄무렵 신께 75마리의 사슴을 위시로 하여 물고기, 새, 짐승 고기를 산처럼 쌓아 술과 함께 바쳐

화톳불에 그것들을 비추며 신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연회를 즐기곤 했다.

 

이 전시는 에도시대 중기의 모습의 일부로, 텐메이 4년(1784) 3월 6일의 온토사이를 견문한

스가에 마스미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잔뼈가 굵은 동덕이라면 간간히 동인지에서 봤을, 스와의 중요 제례중 하나인 온토사이의 모습

토끼, 뱀, 물고기의 내장... 별의 별 고기들을 다 해체해서 신께 바쳤다

이렇게 많은 제물을 바칠 능력이 됐다니, 중세 스와 신사의 위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역사 덕분에 지금도 일본의 유력 신사로 이름이 높다.

신장관 뒤뜰에는 모리야 씨족이 모시는 토착신, 미샤구지 신사가 진좌해 있다.

작은 사당이지만 영적인 힘이 느껴진다는 파워 스팟으로 여겨지기도.

하기사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토착신이니 그럴만도 하다.

다시 발을 놀려 마에미야 방면으로

마에미야는 다른 스와대사들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그 역사는 가장 깊다고 알려져있다.

실제로 현인신과 신장관의 저택은 원래 모두 마에미야 인근에 있었다.

주변 유적에서 야마토 문화권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고고학 사료들도 많이 출토되어,

외부 세력이었던 자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취략을 이루고 살았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름부터가 '이전의 신사', 전궁前宮이다. 

동방풍신록 CD라벨을 장식한 마에미야의 온바시라

인근에는 카나코의 스펠카드로 등장한 마에미야의 신수(神水), 스이가 개울물도 흐르고 있으니 목을 축이고 가자

마에미야 배전 코앞에 있는 찻집 겸 밥집, 챠도코로 야마자토(茶処山里)

스와는 동방 최대의 성지로 수많은 가게들이 동방과 연을 갖고 있지만

이 식당은 스와대사 앞에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는지, 가게 안이 동방 굿즈들로 가득하다.

 

식당 창문에서 마에미야 본전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신슈 소바 맛도 훌륭했다

난 일본 면식중엔 소바가 제일 좋더라..

안에 들어가니 나고야에서 왔다는 2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남자 한 명이랑, 노부부 두 명이 손님으로 있었는데

사람 좋은 주인 할머니께서 요리 준비하시며 이래저래 대화 물꼬를 틀어주셔서 재밌게 이야기했다

온바시라 마츠리 보러 왔다는 노부부 손님들은 내 옆동네에 사셔서 웃겼다 ㅋㅋ 나중에 상점가에서 만나면 인사하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허락을 받고 찍은 굿즈

그렇게 한국인이 스와를 어떻게 알고 왔냐, 벚꽃 얘기, 마츠리 얘기 하고 있다가 노부부 두 분이 다 드시고 나갔는데

갑자기 혼자 있던 손님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동방 굿즈인 후모후모 인형을 꺼내들더니 늘어놓기 시작했다 ㅋㅋㅋ

알고보니 경력 있는 동덕에, 미국에서 일하면서 성지순례도 하고다니다 코로나때문에 귀국한 상황이라 하셨다.

이렇게까지 덕력 있는 동덕을 우연히 만날줄은 몰랐는데, 통성명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진득하게 나눴다.

 

주인장 할머니는 흔한 일이라는듯 그냥 일만 하시는게 또 웃겼다

 

모리야 신사 오마모리, 이걸 갖고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그 사람도 한국인 오타쿠가 스와까지 와서 뚜벅이로 성지순례하는게 갸륵했는지

지금부터 일이 있어서 도치기에 가야하는데, 가까운데 어디 갈곳 있으면 태워주겠다고 조수석도 내어주셨다.

 

거기다가 모리야 신사 오마모리도 하나 선물로 주셔서 감사히 받아왔다.

신사 예대제 날에만 입수할 수 있는 정말 귀한건데...

그렇게 차를 얻어타고,

카미샤에서 야마다시 의식을 통해 운반한 온바시라를 거치해두는 강변 공터로 향했다.

 

이 부근은 단체 버스도 오고 사람들도 많아 확실히 축제 분위기가 났다.

후모러 동덕 양반이 들고있던 사나에 인형도 함께 한 컷

마에미야의 온바시라들

모리야의 사나에는 모든 것을 알아요

 

이 뒤에도 감사하게 역까지 태워주셨다. 오타쿠에는 국경이 없다.

포장마차가 서고, 벚꽃도 만개했지만, 축제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없이 허전해 보이는게 아쉽긴 하다.

그래도 이런 이례적인 온바시라제를 체험한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스와묘진께 코로나 퇴산을 가슴깊이 빌었으니, 6년 후를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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