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스와 야행버스는 현재 코로나로 운휴 중이다.

올해는 6년만에 스와의 온바시라 마츠리가 열리는 해다.
코로나때문에 행사가 대폭 축소되어서 안 가려다가, 이번에 놓치면 6년 뒤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생각에 

아무런 생각없이 당일 심야버스를 예약하고 바로 떠났다. 

야행버스를 한두번 타본 건 아니지만, 예정에도 없던 여행이라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잠자리가 불편한 버스에서 잠을 설쳤다. 뒷자석에 사람도 있어 의자를 많이 젖히지도 못했고...

JR 마츠모토역

어찌저찌 8시간만에 마츠모토 도착

여기서 시노노이선-츄오선을 타고 스와로 향한다

오카야역 구내, 온바시라제를 홍보하는 포스터와 온바시라

카미스와행 열차를 집어타고 7시경 오카야에 도착했다.

일단 스와에 도착했으니 스와코님께 인사를 드리러 바로 모리야 신사로 향한다.

모리야 신사 토리이

모리야 신사 도착


https://chohot-touhou.tistory.com/378?category=832034

 

모리야 신사 & 후지시마 사 (洩矢神社・藤島社)

겨울방학을 맞이해 다녀온 2박3일간의 나가노 성지순례 (2018.02.07 ~ 02.09) 나가노현은 동방 프로젝트의 창시자인 ZUN의 고향이 있는 곳이자 풍신록 스토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스와 대사가 자리

chohot-touhou.tistory.com

관련 순례기가 있으니 참조 바란다. 여기선 간략한 설명만..

이번 순례기는 이전 순례기에 올린 내용과 중복되는 설명이 조금 있다.

 

모리야 신사는 스와의 토착신인 모리야신을 모신 신사로, 모리야신 = 모리야 스와코다

스와의 대부분의 신사는 토착신을 몰아내고 새로운 신이 된 스와묘진(카나코)을 모시기 때문에, 모리야신을 모시는 신사는 이곳이 사실상 유일하다

2년 사이 코마이누의 입, 코, 귀가 더 새빨개졌다. 새로 칠한걸까.

예나 지금이나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싸여있는 마을의 작은 신사

모리야 신사 본전

변함없는 모습으로 동덕들의 순례처가 되어주고있는 모리야 신사

수많은 이타에마들도 건재하다

동방풍신록 루나틱 노미스 노봄 클리어하게 해주세요!

에마를 꺼내는 박스에는 팬들이 놓고간 스와코 굿즈도 잔뜩 있었다.

아쉽게도 에마는 없었다. 있었다면 하나 봉납하고 갔을텐데..

 

모리야 신사 유서략기

진좌지 : 오카야시 카와기시 하시하라 (岡谷市川岸橋原)

제신 : 모리야신 (洩矢神)

 

 

스와다이묘진화사에 따르면, 먼 옛날 스와에는 선주 신인 쿠니츠카미 모리야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타케미나카타가 침입하려고 했다.

 

모리야신은 「철 바퀴」를, 타케미나카타는 「등나무 넝쿨」을 무기로 하여 싸웠으나 모리야신이 굴복하였다.

그 때 타케미나카타가 등나무를 던진 곳에 등나무숲이 자라났고, 그것이 강 건너에 있는 후지시마 신사이다.

모리야신은 타케미나카타에 복속되어 그의 최고직인 신장관이 되어 타케미나카타를 도와 스와지방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의 자손은 모리야신의 신덕을 드높이기 위해 텐류가와(天竜川)를 사이에 두고 후지시마 신사 건너편에 모리야신을 모셨고

 

그것이 모리야 신사의 시초이다.

 

(후략)

보통 고대의 신화에서 패배한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마련이나,

모리야신에 대한 신앙은 절멸되지 않고 타케미나카타 신앙과 함께 공존해왔으며, 스와 신앙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모리야신이 모리야 스와코고 타케미나카타(스와묘진)가 야사카 카나코니, 틀림없는 동방의 성지.

동방 스토리에서 스와코와 카나코가 한때 대전쟁을 벌였음에도, 함께 살아가며 친구로 지내는 이유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신사 뒤쪽으로 나와 중앙자동차도 쪽으로 향하는 임도

원래 모리야 신사가 서있던 곳에 세워져있는 구지비(旧址碑, 옛 터 비석)

개발의 등쌀에 사당이 이사하게 되었지만, 모리야신의 숨결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스와묘진 입성 신화의 무대가 되었던 텐류가와 강

모리야신이 진좌한 모리야 신사를 마주보고, 타케미나카타의 후지시마 신사가 서있다.

모리야 신사와 후지시마 신사를 공중촬영한 사진, 두 신사의 거리는 300m 남짓이다.
고대 전쟁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토착세력과 신규세력이 정말로 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후지시마 신사 주변에선 야마토 조정과 관련된 고고학 사료들이 출토되어, 신화의 실제성을 뒷받침해준다고.

그렇게 신화 속에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던 타케미나카타의 후지시마 신사는

지금은 길가의 작은 사당 수준으로 규모가 축소되어있다

이 작은 사당은 스와 신앙의 시작점을 증언하고 있다.

스와 신앙는 일본 전국에 25,000개소가 넘는 신사를 거느린 대신앙..

 

초라한 사당이지만, 그 끝은 창대하였다.

일본 전국에 25,000개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스와 신사의 총본산이 바로 스와에 위치한 스와 대사다.

스와 대사에선 6년에 한번 호랑이해와 원숭이해에 온바시라 마츠리(御柱祭)를 개최한다.

무려 1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의식..

 

온바시라 마츠리는 직역하자면 '기둥 축제'인데, 신사의 경내에 세울 나무 기둥(온바시라)을 산에서 끌고오는 일련의 의식을 일컫는 말이다.

온바시라는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벌목해 수십km를 끌고 오는데, 온 지역 사람들이 참가해야 하는 대규모 의식이다보니 그 위세와 유명세가 고대로부터 대단했다.

일례로, 1996년 나가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도 개회식을 온바시라 의식으로 시작했다.

 

온바시라 축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키오토시(木落とし), 직역하면 나무 떨어트리기

저 거대한 나무를 산에서 30km가량 끌고와, 도저히 우회할 수 없는 언덕에선 사람들이 저렇게 타고 내려오며 신사까지 모시고 간다.

영상에서 알 수 있듯 매우 위험한 의식인지라 매번 사망자가 속출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런 장대한 장면들 덕분에 참배객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고

6년 전 온바시라 축제의 참가자는 2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모스와역 앞의 온바시라

그런 온바시라 축제가, 1200년의 장구한 역사 중 처음으로 인간의 힘이 아닌 기계의 힘을 빌려 개최되었다.
이유는 물론 2020년부터 전세계를 덮치고 있는 코로나.. 

장대한 온바시라 끌기도, 짜릿한 키오토시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방역을 위해 사람들이 온바시라는 트레일러로 운반하고, 키오토시는 생략하게 되었다.

 

덕분에 200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도 올해는 격감..

그래도 이런 이례적인 온바시라는 다시 없으리란 생각에 가보았다.

마을 사람들도 놀러온 나 보고 다들 '이런 온바시라 마츠리는 다시는 없을테니 오히려 진귀한 구경한거'라고 해주더라.

 

마을버스를 타고 시메카케 교통 통제선 내부 진입

외지인이 축제 보러 온게 좋았는지 버스기사 아재가 이것저것 물으면서, 방송국 기자들도 엄청 왔다고 자랑하셨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더 성대하게 개최되었을텐데.. 아쉽기만 하다

카미샤 혼미야의 배전

다소 복잡한 이야기고 이전 순례기에서 썼기 떄문에 간략히 설명하자면, 스와 대사는 네 곳의 신사로 나뉘어있다.


스와호 하류의 시모샤(下社, 시모샤) 하루미야春宮 / 아키미야秋宮
스와호 상류의 카미샤(上社, 상사) 혼미야本宮 / 마에미야前宮

온바시라 의식은 크게

산에서 마을 어귀까지 온바시라를 끌고오는 야마다시(山出し)와 

마을 어귀에서 신사까지 온바시라를 끌고오는 사토비키(里曳き)로 나뉜다.

산에서 사람들이 나무를 끌고와서 그날로 신사에 기둥을 세우려면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보니, 

야마다시와 사토비키는 대략 1달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다.
아무래도 키오토시나 카와고시(川越し, 강을 넘는 구간)가 포함되어있는 야마다시가 더 볼거리가 많다.

내가 찾은 날은 시모샤의 야마다시 의식 첫날로, 

산에서 끌고온 온바시라를 시메카케(注連掛)라는 언덕에 거치해두는 것으로 끝난다.

즉, 시메카케는 시모샤 야마다시 행렬의 종착지이다.
교통통제선을 넘으니 신문기자랑 방송국 사람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그밖에 소방과 경찰이 현장을 열심히 통제중이었는데, 그야말로 민관협동의 축제라는 느낌이다.

사진속의 급한 커브길을 트레일러가 돌아갈 예정이라 기자를 제외한 일반인은 안전한 구역으로 안내되었다.
옛날 영상들을 찾아보며 예습해갔지만, 워낙 이례적인 형태로 진행되다보니 뭐가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사람의 힘으로 온바시라제를 행할 때에는 수 시간 지연은 기본이고, 심하면 하루 넘게 지연될 때도 있다던데

트레일러로 옮기는데도 예정 시간을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기다리던 기자들도 지치고 소방관들도 지치고..ㅋㅋㅋ 

기다림의 끝에, 노래를 부르며 속속들이 도착하는 축제 참가자들과 온바시라 2그루

앞으로 6년간 신사 배전에 서있을 온바시라의 모습

항상 세로로 서있는 모습만 봐서 좀 신기했다

미리 주기되어있던 크레인에 온바시라를 한참 묶는다

온바시라는 17m에 달하는 거대한 전나무를 신관들이 직접 선정한다고 한다.

신의 기운이 깃든 신성한 기둥을 조심조심 들어올리는 모습

완전히 들어올려져 언덕 위로 이송되는 모습

원래같았으면 이걸 다 사람이 하는 장관을 봤을텐데 ㅠㅠ..

두번째 온바시라를 시메카케로 올리는 모습은 언덕 위로 올라가서 봤다.

화각을 늘리니 실감나는 온바시라의 길이

스와묘진의 후손을 자처하는 지역 사람들이 지켜보며, 조심조심 땅에 안착하는 온바시라

스와는 첨단공업지대로 유명해, 마냥 어르신만 계시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도 다수 의식에 참가해 있었다.

휘날리는 온바시라 위원회의 깃발과 온바시라

크레인과 묶인 밧줄을 풀고, 정갈히 놓이도록 조정한 뒤에, 두 온바시라가 나란히 놓이자 신관이 OK 사인을 보낸다.

그러자 사람들이 온바시라를 둘러싸고, 몇몇은 기둥에 올라가 키야리우타(木遣り唄, 나무 보내는 소리)라는 민요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 할머니가 메김소리를 선창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받는 모습

 

3분여간 그렇게 스와의 민요가락을 부르고,

무사히 의식이 끝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박수를 치고 만세 삼창을 하고 야마다시 의식은 끝난다

 

천년 넘게 지방의 이런 민속 의식이 계승되고, 게임으로 재창조되어 활용되고 있는게 보기 좋다.

 

풍신록의 카나코는 스와 신앙의 정점답게 온바시라를 무기로 사용한다.

온바시라 마츠리는 정말 6년에 한번밖에 순례가 불가능한 동방 성지순례의 최대 이벤트인 셈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직접 참가하는 온바시라 축제와 달리

트레일러와 크레인의 힘을 빌려, 하는 시늉만 한 축제는 어딘가 허전했다.

취재진이 인터뷰할 관객이 없어서 똑같은 사람한테 각기 다른 신문사-방송사가 여러차례 취재하는 장면도 목격했고..

 

어쨌든 6년 뒤에는 온전한 형태로 다시 잘 개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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