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맞이해 다녀온 2박3일간의 나가노 성지순례 (2018.02.07 ~ 02.09)
나가노현은 동방 프로젝트의 창시자인 ZUN의 고향이 있는 곳이자
풍신록 스토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스와 대사가 자리한 지역으로
그 어떤 성지보다도 중요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할 수 있겠다.
풍신록의 원형을 찾으러 나선 여정을, 1일차부터 순서대로 찬찬히 되짚어보려고 한다.
돈 없는 대학생에게 기차 이동은 언감생심, 오사카역에서 스와행 야행버스를 타고 갔다.
시각은 오후 10시, 운임은 조기예약 할인으로 4860엔
시기도 시기거니와 오사카->스와 무정차 고속버스라는,
누가봐도 수요가 없음직한 노선이었던지라 버스에는 대여섯명밖에 타지 않았다.
06시 20분, 오카야(岡谷) 역전 정류장에 내려 근처 편의점에서 대강 아침을 해결한 뒤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2월의 문턱은 아직 추웠다.
일본 유수의 강설지대인 나가노는 곳곳이 눈으로 덮여있어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스와호의 유일한 출구이자, 스와대전의 배경인 텐류가와(天竜川)를 따라 발걸음을 바삐 하였다.
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모리야 신사에 도착했다.
모리야 신사의 주신은 모리야신(洩矢神)으로
모리야신은 고사기나 일본서기 등 중앙신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스와의 토착신이다.
스와 지방의 신화을 기록한 스와다이묘진화사(諏方大明神画詞)에 따르면
모리야 신은 스와의 모리야 가문의 선조로 불리며, 스와 일대를 통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즈모 출신의 신 타케미카나타(建御名方神)가 중앙에서 쫓겨나 스와로 도망치고,
이윽고 모리야신과 타케미카나타는 대전쟁을 벌이고 모리야신이 패배하게 된다.
하지만 타케미카나타는 모리야신을 받아들여 모리야신은 타케미카나타를 도와 스와 지방의 개척을 이끌었고,
둘은 오래도록 스와 주민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 고대의 신화에서 패배한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마련이나,
모리야신에 대한 신앙은 절멸되지 않고 타케미카나타 신앙과 함께 공존해왔으며,
스와 신앙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스와 신화에 관해 예전에 썼던 글 링크이다.
보충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첨부해둔다.
모리야신은 모리야 스와코의 모티브가 되었고,
타케미나카타는 야사카 카나코의 모티브이다.
스와코와 카나코가 예전에 전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신사(모리야 신사)의 두 제신으로 모셔지는 것은
상술한 스와 신화에 기반하였다.
즉, 동방풍신록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에 스와 신화의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패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한다는 점이 참 인상깊은데,
신화는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신앙을 덧씌운거니 어느정도 실제 역사와도 일치할 것이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로도 외래민족과 토착민족의 융합이 스와에서 이루어진 것이 드러난다고.
모리야 신사 유서략기
진좌지 : 오카야시 카와기시 하시하라 (岡谷市川岸橋原)
제신 : 모리야카미 (洩矢神)
연기
스와다이묘진화사에 따르면, 먼 옛날 스와에는 선주 신인 쿠니츠카미 모리야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타케미나카타가 침입하려고 했다.
모리야신은 「철 바퀴」를, 타케미나카타는「등나무 넝쿨」을 무기로 하여 싸웠으나 모리야신이 굴복하였다.
그 때 타케미나카타가 등나무를 던진 곳에 등나무숲이 자라났고, 그것이 강 건너에 있는 후지시마 신사이다.
모리야신은 타케미나카타에 복속되어 그의 최고직인 신장관이 되어 타케미나카타를 도와 스와지방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의 자손은 모리야신의 신덕을 드높이기 위해 텐류가와(天竜川)를 사이에 두고 후지시마 신사 건너편에 모리야신을 모셨고
그것이 모리야 신사의 시초이다.
(후략)
이 전쟁 이야기는 스와코의 스펠카드 「스와대전 ~ 토착신화 vs 중앙신화」로 재현되었다.
초록색 탄막은 카나코의 등나무를, 빨간색 원형 탄막은 스와코의 철바퀴를 상징한다.
실제 모리야 신사와 후지시마 신사를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고대 전쟁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저 좁은 곳에 진을 쳤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뭔가 로망이 느껴진다...
모리야 신사와 강 건너의 후지시마 신사가 등나무로 이어졌다는 전설도 있으나
실제로 두 신사는 꽤나 거리가 있어(300여m) 흥미로운 설화로 받아들이는게 좋겠다.
스와대사와 달리 마을 한구석에 자리한 조용한 신사이고,
동방의 모리야 스와코와 같은 한자를 쓰는 신사라는 점도 있어
성지순례 포인트로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정말 많은 수의, 각양각국의 사람들이 봉납한 스와코를 그려넣은 이타에마가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렇게 대놓고 성지순례로 인기몰이(?)를 하는 신사에 캐릭터 에마를 봉납하는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왔구나 하는 실감도 들고..
본전 뒤쪽에 있는 합전에는 후지시마묘진(= 타케미나카타)를 모시고도 있어
모리야신과 타케미나카타를 동시에 모시고 있는 신사이기도 하다.
역시 동방의 모리야 신사는 이곳이 모티브이지 않을까.
모리야 신사에는 지금도 제례일(10월 20일)이 되면 모리야 신장관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이 신앙이 앞으로도 길이길이 이어졌으면 한다.
신사를 뒤로하고 신사 뒤편으로 나있는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내려가다보면
예전에 모리야 신사가 위치해 있었다는 터와 작은 비석이 나온다.
사실 모리야 신사는 몇 번 해체되어 자리를 옮기곤 했는데,
30여년 전 고속도로 공사 때 여기 있던 신사를 건설 사정상 고속도로 북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모리야 신사의 정확한 위치는 비정하기 힘드나
고문헌과 고고학적 사료에 비추어보건대 텐류가와 건너편, 이곳 근처에 있던 것은 확실시된다고 한다.
모리야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강했으면 옛 터에도 번듯한 비석을 세우고 토리이를 쳤을까...
무덤을 이장할 때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담아 제사를 올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눈이 내리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드문드문 발자국이 보이고
조그만 사케병 하나가 놓여있는걸 보니 지금도 이곳을 찾아 모리야신을 참배하는 신자가 있는 듯했다.
숭고하다.
아침햇살이 막 밝아오는 8시 무렵의 스와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텐류가와를 건너, 이번에는 타케미카나타를 모시는 후지시마 사로 향한다.
(※ 후지시마 사의 社는 절을 뜻하는 寺가 아니라, 작은 사당이나 신사를 뜻하는 한자이다.)
스와다이묘진화사에 후지시마 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신님께서 스와에 처음 들어왔던 태곳적에, 모리야 악당패 본거지를 쳐부수고자 하였도다.
모리야는 철 바퀴를 가지고 싸우고, 스와묘진은 등나무 넝쿨로 반격하였다...
(중략)
묘진이 종전 서약을 위해, 등나무 가지를 던지자, 가지가 떨어진 곳에서 뿌리와 잎이 자라나고,
새싹이 돋아나 전장의 증표가 되어 만만토록 전해온다.
그곳이 이 후지시마 사이며, 그런고로 사당의 창립은 고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즉, 후지시마사는 과거에 타케미나카타가 스와 지방에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이며,
모리야신과 전쟁을 벌인 장소기도 하다는 전승이다.
그때문에 신사 옆에는 '카와기시 텐류가와 강변 스와묘진 입성 전설의 땅'이라는 표지가 세워져있다.
사실 후지시마사 또한 재개발(?)의 등쌀에 떠밀려 한 차례 사라졌다가,
10여년 전 복원되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때문에 모리야 신사보다 더욱 처량한 모습으로 서있었는데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지고 참, 안타까웠다.
이 후지시마 신사와 모리야 신사는 직선거리로 300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데
실제로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세워져 있다.
역시 스와 성지순례는 스와대전의 무대인 모리야 신사와 후지시마 신사부터 시작해야 제격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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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신사
주소
長野県岡谷市川岸東1丁目12
나가노현 오카야시 카와기시히가시 1쵸메 12
가는 방법
JR 츄오 본선 오카야역 하차, 도보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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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마 사
주소
長野県岡谷市川岸上1丁目1
나가노현 오카야시 카와기시우에 1쵸메 1
가는 방법
JR 츄오 본선 오카야역 하차, 도보 15분
스와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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